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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 유럽 도시 기행1

반란을_꿈꾸며 2019. 7. 19. 14:52

제목 : 유럽 도시 기행1

작가 : 유시민

번역 : 

출판사 : 생각의 길

읽은날 : 2019/07/10 - 2019/07/18

분류 : 일반

 

믿고 읽는 유시민 아저씨의 신작.

나오는 그날 가서 바로 샀다..

기존에 읽던 책에 비해 많이 말랑말랑하다. 예전에 읽었던 유럽 문화 이야기같은 느낌인데 그당시 책들보다도 더 말랑말랑하다.

그래도 중간중간 도시에 대해서 생각하고 읽어내는 모습은 여전하다.

이 책은 유럽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는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여행하며 쓴 에세이다. 

런던이 빠졌다는게 좀 아쉽긴 한데 앞으로 런던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인터뷰를 보면 다음번 책은 빈과 프라하쪽인것 같다)

폐허만 남아있는 아테네를 거니는 느낌을 나도 느꼈다. 아무것도 없지만 아테네는 그래도 한번 거닐어볼만한 동네인 거 같다. 다음에 가면 나도 꼭 소크라테스가 놀았을 그 동네에 가봐야지.

지저분하고 나에게 불친절했던 로마...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은 가봐야 할 곳. 생각해보니 로마의 일몰을 못본것 같다. 이것도 다음에 가면 꼭 해봐야지. 

이스탄불은 아직도 못가본 곳. 콘스탄티노플 함락이나 로마제국의 멸망에서 가장 중요한 곳임에도 아직 내게는 멀기만 하다. 이미 잿빛으로 변한 도시임에도 한번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도 빨리 가봐야겠다.

마지막으로 파리.. 파리를 그렇게 여러번 들락날락 했지만 아직도 왜 파리가 좋은지 모르는 나에게 유시민 아저씨가 파리를 즐기는 팁을 주셨다. 다음에 가게되면 그 팁대로 파리를 돌아봐야겠다. 

다른 사람의 기행기를 읽으며 그 도시를 다시 떠올리면 내가 느낀 것과 다름을 많이 보게 된다. 그만큼 도시가 주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스토리텔링 시대라 그런지 이제 여행 정보보다는 이런 걸음걸이 책이 더 맘에 든다. 

 

 

p8 그 텍스트를 쓴 사람이 언제,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목적을 품고, 왜 하필 그런 방식으로 썼는지 알아본다 

p20 아테네는 괜찮은 동네에 있는 역사 전문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크지 않아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고, 주변의 특색있는 카페와 가성비 좋은 식당에들에서 자잘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p24 아크로폴리스는 여행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랑 얘기하고 싶어? 그렇다면 나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보고 와서 상상력을 최대로 펼쳐 봐' 

p33 그로부터 200년이 더 지났을 때 영국 외교관 엘긴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파르테논의 품을 뒤져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지갑을 털어갔다 

p36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의 그리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시실은 그들이 저질렀던 약탈행위를 증언하는 외국 문화재 포로 수용소에 지나지 않는다 

P44 발칸반도 북쪽에서 아티카 반도로 이동해  그들이 청동기를 사용했고 국가 비슷한 사회조직을 형성했으며제법 규모가  성을 축조했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되었다역사학자들은 그것을 미케네문명이라고 한다 

P50 1974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때는 마라톤을 하지 않았다주최국 이란이 페르시아의 후예인 만큼넉넉히 이해할 만한 조처였다고 하겠다 

P52 운전을 해준 메테오라 출신 청년이 이해할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여기에  한국인은 당신이 처음일걸요 

P54 중국에서 제자백가의 사상이 들꽃처럼 피어났던 바로  시기에 논리학과 수사학을 가르치는 소피스트 집단과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가 나타나 인간의 본성과 삶의 의미자연과 우주의 생성 원리를 탐구한 것이다 

P57 제우스 신전과 아크로폴리스 남쪽 비탈의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이 대표적인 로마 유적이다 

P67 아스파시아는 똑똑하고 말도 잘했으며 당대의 지식인들과 널리 교류했다아스파시아 말고는 소크라테스가 덕이 있는 여자라고 말할 만한 사람을 찾을  없다하지만 아테네 시민들은 아스파시아를 가리켜 첩년 또는 밀레토스 창녀라고 했다 

P71 분서는 진시황이나 히틀러 같은 개인 독재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개인의 독립성과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무지하고 변덕스러운 대중이 독재자와 다름없는 야만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P80 스마트폰을 동영상 모드로 놓고  곳을 바라보고 앉아 있자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금  순간을 즐기면 되는 무얼 위해서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근심하며 종종걸음을 친단 말인가 

P98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지만 관광업을 빼면 이렇다  산업이 없기에 전국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빚이 많은 도시가 되고 말았다 

P101 내 느낌엔 루리치가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역사 유적을 민족주의를 비롯한 특정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데 쓰지 말자" 그가 정말 그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 여부는 모른다. 예술작품을 해석할 권리는 보는 사람에게도 있으니, 그게 아니면 또 어떤가 

p127 콜로세오의 아치와 판테온의 돔은 유럽 건축에 크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p130 스무 살에 혁명운동을 시작한 제노바 태생의 법률가 마치니는 두 번이나 사형선고를 받았고 고달픈 망명 생활을 했지만, 공화제 통일국가 수립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에마누엘레 2세의 군주제 통일을 끝까지 비판한 그가 1872년 세상을 떠나자 피사에서 열린 장례식에 10만 추모객이 몰렸다 

P132 가리발디는 단순한 군사 영웅이 아니라 확신에 찬 휴머니스트이자 투철한 공화주의자였다. 노예제 폐지에 대한 신념이 불확실하다며 링컨 미국 대통령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강력한 신념의 소유자였던 그는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는 입법을 시도했다 

p136 바로크 양식은 어떤 것인가? 여러 자료를 검색한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돈을 많이 들여 최대한 비싸고 화려하게 보이도록 무언가를 만들라. 그렇다면 그게 바로크 양식이다 

P149 광장 한가운데 오벨리스크는 베드로를 처형했던 네로 황제 시대의 공연장 장식이었다. 오벨리스크 양편의 화려한 분수대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순례자들이 대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세례 의식을 행한 시설이었다 

p156 브루노는 진리를 확신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교황청의 권력자들은 자기네가 진리라고 주장해 온 것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죄 없는 과학자를 불태워 죽였다 

p157 카테리나는 4세기 초 막센티우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알렉산드리아 귀족 가문의 젊은 여인이다 

p162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하신 일이 없네요. 그분이 성인으로 추앙받는 것은 아마도 예수님처럼 살았기 때문일 겁니다 

P165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 

p170 그래, 여긴 이스탄불이지. 주민과 여행자들이 각자 제멋대로 영어를 해도 그럭저럭 소통할 수 있는 도시 

p175 터키공화국이라는 그릇은 1천 500년 이어진 국제도시 이스탄불의 문화 자산을 담아낼만큼 크지 않았던 듯하다 

P183 기독교 교회 하기아 소피아는 이슬람 사원 아야소피아 자미로 바뀌어 비잔틴제국 황제가 아니라 오스만제국 술탄의 힘과 종교적 권위를 나타내는 표식이 되었다. 부서지지 않았다는 것만 빼면 파르테논과 똑같은 수모를 당한 것이다. 사람이든 집이든, 오래 살면 별일을 다 겪기 마련이다 

P188 지하궁전에는 300개 넘는 돌기둥이 잘 훈련받은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반듯하게 맞추어 천장을 받치고 있다 

P190 마침 괴물 형상을 그려놓은 돌덩이 2개가 있었는데, 기둥을 받치기에 적당하게 놓다 보니 하나는 거꾸로, 다른 하나는 옆으로 놓게 되었다. 기둥을 안정시킬 수만 있다면 메두사가 바로 서든 뒤집어지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일을 한 현장감독은 그것이 구름 관중을 불러 모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메두사가 거꾸로 앉게 된 경위에 대한 나의 별 근거없는 추정이다. 그렇지만 제법 그럴듯하지 않은가 

p192 수많은 첨탑과 돔 지붕이 만든 구시가의 스카이라인 위로 붉은 노을이 번진 옛 제국의 수도에서 소리의 길이와 높낮이를 달리하면서 이어지는 아잔 배틀을 듣고 있으니 이런 맛에 여행하는 것인가 싶은 만족감이 차올랐고, 메카 쪽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오스만제국 술탄의 뒷모습을 본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P197 우월한 무기뿐만 아니라 뛰어난 지략을 가진 군사 지도자였던 그는 보스포루스해협 가장 좁은 곳의 양안에 루멜리 히사리와 아나돌루 히사리라는 요새를 세워 해협을 통제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을 완전히 고립시켰다 

p204 이스탄불은 모든 것이 낡고, 한적하고 텅 빈, 흑백의 단조로운 도시로 다뀌었으며 거리에서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영어, 히브리어가 사라졌다 

p211 아타튀르크는 인류 문명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모순적인 인물이다. 탁월한 군사 지도자인 동시에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며, 공화주의자였지만 강력한 독재를 했다 

p227 피에르 로티는 파리보다 이스탄불에서 훨씬 더 유명했다. 그의 본명은 줄리앙 비오. 해군장교로 복무하면서 소설을 썼는데 대부분 주둔했던 지역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아 만든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 

p230 이스탄불에서 한국인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손자나 조카를 우연히 만나는 일이 많다. 그런 인연을 가진 이가 그토록 많을 줄은 몰랐다 

p231 진열장의 음식은 충분히 생각한 다음 정확하게 한 번에 짚어야 한다. 손가락을 함부로 움직이면서 대충 가리켰다가는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받아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p238 외국인이 붐비는 구시가지 카페에서 마셨던 터키 커피는 터키식 커피가 아니었다. 그냥 터키에서 파는 커피였을 뿐이다 

p246 파리는 14세기까지만 해도 보잘것 없는 변방의 도시였으며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에 견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역사가 짧아 고대의 건축물이 거의 없다 

P248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불붙은 백년전쟁은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대를 이어 벌어졌다 

p253 노트르담 대성당 마당의 샤를마뉴 대제 청동 기마상에 눈길을 주는 관광객은 없었다. 우측면 정원의 기도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조각상도 그랬다. 이 총동상과 조각상은 노트르담이 종교와 정치의 권력 중심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관광객들은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다 

p260 루브르를 지배하는 것은 작품의 아름다움과 예술가의 열정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권력의 횡포, 집단적 허영심이다 

p266 토론과 타협으로 내전을 막은 사실을 근거로 삼아 이름을 지은 아테네의 오모니아 광장과 달리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그렇게 이름을 지은 1830년 이후에도 혁명과 반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무력 충돌과 학살 행위가 벌어지곤 했다 

p275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에 완패한 나폴레옹은 남대서양의 영국령 세인트 헬레나섬에 갇혀 체스와 영어 공부로 소일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세계관을 구술한 회고록을 남기곡 1821년 5월 5일에 사망했다 

P277 나폴레옹 3세는 20년 가까운 집권 기간 동안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을 기용해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 등 프랑스의 대도시들을 혁명적으로 개조했다. 드골 광장을 중심으로 12개의 대로가 방사형으로 퍼져나간 오늘날 파리의 도시 구조를 만든 것이다 

p280 프랑스 영화의 주인공들은 쉴 새 없이 말을 하는데, 영화 속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파리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것보다 말을 더 많이 했다. 큰 소리를 내는 이는 없었지만 조용히 먹기만 하는 테이블도 없었다 

p287 베르사유 궁전와 왕과 왕비, 왕자, 공주들의 생애와 관련한 정보를 검색해보면 전염병이 매우 공정해서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등 전파가 쉽고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은 대부분 농업혁명으로 인간과 가축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서 생겼다 

p290 사족이지만 그때 서명한 조약에 샴페인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의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한 스파클링 와인에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P293 그들은 헤어 스타일마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생활하기에 최대한 불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