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작가 : 안병억
출판사 : 페이퍼로드
읽은날 : 2021/05/10 - 2021/05/20
이게 시리즈인것 같다. '하룻밤에 읽는 ~~'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시리즈가 있는데 뜻밖에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가 있어서 읽어봤다.
한국사에 이어 세계사도 나오려나보다.
가볍게 교양으로 읽기에 참 좋다
내용은 개론 수준이지만 전체적으로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유럽대륙만큼은 아니지만 켈트족을 비롯한 수많은 민족이 이 땅에서 전쟁도 하고 화목하게 함께 살면서 민족을 이룬걸 알게 됐다. 물론 지역적으로 다수 민족이 있어 독립요구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 잘 관리하며 영국을 만들어가는 것 같다.
변방의 섬나라가 스페인이나 네델란드,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 최강의 국가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잔인함과 가혹한 모습 뿐만 아니라 처세에 능하고 기회를 잘 포착했다는 생각도 든다.
거문도 점거를 빼면 우리나라를 침략한 적도 없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적도 없지만 영국역사에 나오는 식민통치 모습은 결코 인권국가의 모습은 아니다.
우방이란 없다. 단지 현재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호를 다질 뿐...
영국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p9 영국은 이처럼 대륙과 다름, 그리고 역사적 연속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p16 브리튼 섬에 살던 원주민 켈트족은 유럽대륙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2010년에 유전학자들은 이들이 터키 중부 아나톨리아 대평원에서 이주했음을 밝혀냈다
p24 런던 의사당 앞 웨스트민스터 다리 옆에는 보아디케아의 동상이 있다. 앞발을 힘껏 박차고 하늘로 치솟는 두 마리의 말에 올라탄 여왕의 모습이다
p52 대규모로 바다를 건너온 앵글로색슨족은 잉글랜드 전역을 피로 물들이며 그곳에 거주 중이던 켈트족과 싸웠다
p64 솔즈베리 서약은 막강한 왕권을 보여주는 한 예다. 윌리엄은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약 140여 킬로미터 떨어진 솔즈베리에 왕궁을 세웠다. 그리고 1086년 8월 1일, 수많은 귀족과 소작인들을 이곳에 모이게 했다. 170명의 귀족, 그리고 소작인들이 모여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절대 충성을 맹세했다. 영국 역사에서 이런 규모로 왕에게 충성을 서약한 적은 없다
p84 중세 왕권이 매우 막강하던 시기에 몇 차례의 내란을 거쳐 마침내 귀족들이 중심이 되어 왕권을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p101 봉건제 붕괴를 가속화한 것은 1347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에 퍼진 흑사병이었다
p114 38년 치세 동안 헨리 8세는 영국 사회 곳곳에 여러 흔적을 남겼다. 트리니티컬리지도 그가 남긴 자취 중 하나다
p118 헨리 8세는 6명의 왕비 가운데 2명을 처형했고, 심복이었던 토머스 크롬웰과 같은 대신을 처형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은 잔혹한 군주였다
p136 당시 의회는 젠트리가 주도했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으로 세습 귀족이 많이 죽으면서 귀족들의 세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p147 권리장전은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p150 자연상태와 같은 무정부상태보다는 최악의 독재자 통치가 더 낫다고 그는 봤다
p154 윌리엄 3세의 즉위부터 영국이 1815년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프로이센 등과 힘을 합쳐 나폴레옹전쟁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영국과 프랑스 간 종종 벌어진 전쟁을 제2의 백년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p160 영국이 프랑스와의 계속되는 전쟁에서 안정적으로 값싸게 군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것도 번창한 상공업과 주식회사의 성장덕분이었다
p176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왕위 계승권 허용을 놓고 벌어진 전쟁이다
p179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을 종결한 아헨조약은 영국과 프랑스에게 8년간의 휴전시간을 주었을 뿐이다. 1756년 유럽대륙과 인도식민지,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7년전쟁이 발발했다
p203 아메리카ㅗ 운송되는 과정에서 병에 걸려 죽는 노예가 약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다
p205 영국 안에서 노예무역 폐지는 점진적으로 전개되었다. 주로 기독교 인도주의자들이 노예무역 폐지를 요구했다
p211 강희제부터 건륭제까지 시기를 중국에서는 강건성세라 부르며 태평성대중 하나로 간주한다
p225 이집트는 로제타스톤을, 그리스는 엘긴대리석을 반환해달라고 영국에게 끈질기게 요구해왔으나 영국은 매번 거부했다. 양국이 소장품을 제대로 보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p227 프랑스의 루브르, 러시아의 에르미티슈와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박물관은 8백만 점이 넘는 소장품을 보유중이다. 이가운데 1퍼센트에 불과한 8만점 정도만이 전시중이다
p230 유럽대륙에서 강대국이 성장해 세력 균형을 깨트려 영궁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저지하는 게 영국 외교의 기본 방침이었다
p255 콥든-슈발리에 조약 체결 후 영국과 프랑스의 교역은 두 배 이상 늘어났다
p267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펼쳐지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학자, 실천가, 혁명가로서 삶을 마감했다
p270 영국의 지배계급은 너무 늦지 않게 노동자에게 양보를 하여 이들이 급진적인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억지할 수 있었다. 이런 개혁 덕분에 영국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제한적인 영향만 미쳤을 뿐이다
p282 FTA 체결 후 국가 간 교역은 늘어나지만 분배는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 시장개방으로 더 큰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지원말이다. 170여 년 전 영국에서도 이런 견해가 나왔다. 밀의 혜안이 놀랍다
p287 대승을 거둔 영국군은 1842년 중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홍콩의 할양과 광동, 아모이 등 5개 항구의 개항, 영사관 설치, 재산피해 배상 등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다
p287 1856년 시작된 2차 아편전쟁에서도 영국은 압승을 거두어 중국과 텐진조약(1858), 베이징조약(1860)을 체결했다
p292 키플링은 영국이 인도 등 각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 "신이 부여한 책무"이듯 미국에게도 문명화라는 백인의 부담을 질 것을 촉구한다. 당시 상당수 지식인들이 지녔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p298 1만 명이 넘는 민간인을 살해한 투르크조차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그때나 현재나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p312 영국군은 퇴각하면서 적에게 넘어갈 수 있는 모든 것-토지와 건물 등-에 불지르는 초토화 작전을 실행했고 보어인 민간인을 질병이 들끓는 강제수용소로 몰아넣었다
p321 통일 후 비스마르크 정부는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고 보호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억제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뒤늦게 산업혁명을 시작하는 후발주자의 따라잡기 전략이다
p340 파리강화조약 참가자들은 앞으로 유럽이 어떻게 살아갈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유럽의 생존방식에 관심이 없었다
p350 영국은 대공황 극복책으로 식민지 및 자치령으로 파은드화 블록을 구성하고 제국특혜관세 제도를 운영할 수 있었다
p362 복지국가의 기틀을 허문 보수당의 총리 대처조차 플레멘트 애들리의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p365 현재 영연방은 영국을 포함해 54개 국가로 구성된 느슨한 조직이다. 국제협력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인권 발전을 촉진하고자 한다. 아직도 호주와 캐나다 등 16개국은 엘리자베스 영왕을 공식 수반으로 인정한다
p405 경제위기의 와중에 취약층의 복지를 삭감한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외부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p414 영국이 외교정책에서 아주 자주 미국을 드러내놓고 지지하기에 미국의 푸들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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