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룟유다 딜레마
작가 : 김기현
번역 :
출판사 : IVP
읽은날 : 2019/12/20 - 2020/01/05
분류 : 종교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설이 존재한다.
예수가 인도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다빈치코드처럼 결혼해서 아이낳고 살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초대교회 시절 교회와 가장 크게 대립했던 영지주의자들의 저작들은 지금까지도 교회를 괴롭힌다.
현대교회가 이원론에 빠져있다 보니 이런 공격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복음..
예수쟁이로 살아가는게 참 힘드네..
P32 이처럼 뻔뻔스럽고도 대담하게 돈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와 이데올로기를 공공연히 주장한 전례가 없습니다
P49 비록 설명의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좀더 성경적이고 합리적입니다
P53 최후의 애정 표시가 유다로 하여금 어두움의 권세에 최종적으로 굴복하는 것을 재촉한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빛을 깨닫지도 이기지도 못했다
P59 문익환 목사님은 이런 본회퍼의 길이 예레미야의 길이라고 정확하게 간파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기 조국을 사랑하기도 어렵지만, 조국의 패망을 위해 생명을 내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결정입니다
P64 결론적으로 신비가 있다면 유다의 배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악한 배신 행위를 선으로 활용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P78 자살은 그 공동체의 실패를 보여 준다는 것이지요
P96 다음으로 그는 악역이 아니라 악인입니다
P125 그는 신약 성서와 초기 교회가 극복하려고 한 것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반이방주의라고 합니다
P131 영지주의란 말 자자체가 지시하는 바는, 신비적 지식을 통한 구원의 종교입니다
P136 몸은 모든 기독교 교리의 기초요 핵심이다. 기독교를 영지주의나 헬라 철학과 구별시켜 주는 결정적 단서는 몸이다
P143 유다복음은 '유다에 의한 복음'이 아닙니다. '유다의 복음'입니다
P150 성서의 하나님은 창조주이며, 그분의 창조물은 선하다는 것이 기독교 창조 신앙의 알맹이입니다
P157 플라톤은 그나마 이 세계는 선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유다복음은 애초에 그럴 가능성조차 없습니다
P165 지식을 왜곡한 것을 두고 전통적인 교리 신학에서는 교만과 불순종이라 규정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사악한 의지의 발로입니다
P174 기독교의 구원관은 몸의 부정이 아니라 몸의 변화입니다
P180 성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나 모양입니다
P184 매주일 우리는 주님의 저녁 식사가 아니라 주님의 점심 식사를 실천에 옮기고 있는 셈입니다
P193 요한복음은 유다복음과 달리 예수님이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하지 않고,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P196 요한복음은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도 몸의 부활을 강조합니다
P203 신약의 복음서와 달리 유다복음에서는 예수가 웃는 장면이 많다. 그는 제자들의 나약함과 인간 삶의 불합리성을 비웃는 것이다
P205 타락한 웃음은 우리가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자신을 남보다 높이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P221 장미의 이름에는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이 책의 등장인물 윌리암 수사에 따르면, 그들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P228 오늘날의 교회가 하나님의 애초 의도에 미치지 못한 것을 사실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도리어 방해물인 것이 현실이지만, 불완전하나마 그분의 생각을 세상에 들려줄 사람들은 교회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P235 이처럼 첨예하게 양자가 갈등할 때, 회색지대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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