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벼랑끝의 파리
작가 : 메리 매콜리프
출판사 : 현암사
읽은날 : 2021/05/23 - 2021/06/03
파리를 중심으로 1870년대부터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책.
역사책이라고 해야하나?
이번이 4권째인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시작까지를 기록했다.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길을 잃기 딱 좋은 책이다. 그럼에도 자꾸 읽게 된다.
삽화 하나 없이 500여페이지를 읽는데 글을 잘 써서인지, 아니면 역사가 궁금해서인지 집중해서 읽었다.
책을 읽다보면 2차세계대전이 안일어나는 게 더 이상할만큼 프랑스는 엉망이었다.
좌파정권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우익들의 테러와 시위, 그리고 언론의 가짜뉴스가 나라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유대인들 때문에 프랑스인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익의 선동이 아주 잘 먹혔다. 대공황때니 이만큼 국민들을 호도할 선동이 없다.
옆나라 독일의 전체주의를 부러워하며 프랑스도 히틀러같은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익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아시아에 있는 어느 나라가 떠오른다.
어느 나라나 극우는 나라를 망가뜨리는 데 일등공신이다.
그런 와중에 예술인들의 처신과 행동을 보며 인간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직원들을 억누르기만한 코코샤넬.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며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보며 자기를 더 보고싶어서 저렇게 시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자본가들은 생각이 없는건지 없는척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율리시스를 쓴 제임스 죠이스의 파렴치한 행동과 헤밍웨이의 거만한 모습도 책에서는 계속해서 나온다. 이런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대접하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실비아 비치는 정말 천사다. 실비아 비치가 운영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정말 대단한 서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전쟁이 나자마자 바로 항복해버린 페탱과 끝까지 저항운동을 하는 드골의 모습도 인상깊다. 책을 보면 페탱은 처음부터 끝까지 드골을 방해하고 멀리한다. 역시 지도자가 중요하다.
그외 수많은 인간군상들의 탁월함과 우아함, 그리고 졸렬함을 볼 수 있다.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았다는 데 감사한다.
이런 책은 소장해야 한다. 책장에 여유가 생기면 1권부터 모두 사 모으리라..
p18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대모 노릇을 하던 초기에, 실비아 비치는 아무도 출판하려 하지 않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판함으로써 문학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p22 비치는 "조이스가 얼마나 고생해서 글을 쓰는지 생각하면, 확실히 제값을 못 받기는 한다"라고, 조이스 자신이 전면 지지할 견해에 최대한 양보하면서도, "하지만 그렇다면 그는 다른 종류의 작가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라고 조리있게 덧붙였다
p36 전하는 말에 따르면 엘뤼아르가 갈라를 달리에게 우아하게 양보했다지만 사실상 그는 그 무렵 아름다운 독일 여성 뉘슈를 만나 구애하는 중이었으며, 갈라와 이혼한 후 곧 그녀와 결혼했다
p47 병든 아내와 네 명의 자식, 그리고 돈이 많이 드는 애인까지 두고 있는 데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그의 신세를 지러 온 무일푼인 친척들을 잔뜩 거느리게 된 그는 실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p65 드골은 드문 총명함뿐 아니라 오만한 태도와 반항적인 기질로 호가 나 있었던 것이다.
p86 르노와 시트로엔의 경쟁은 일찍이 전쟁전, 기어를 발명하며 명성과 돈을 거머쥔 시트로엔이 겁 없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어 르노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일반 구매자에게 맞추어진 영업 전략을 구사하면서부터 시작된 터였다
p100 그녀는 헤밍웨이가 자신의 진짜 천재성을 저버린 채 섹스와 끔찍한 죽음에 대한 강박에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것 같다
p102 율리시스가 출간된 직후 거트루드는 (엘리스와 함께)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나타나 실비아 비치에게, 비치가 그 짜증 나는 책을 내는 데 기여한 대가로 자신들은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회원에서 탈퇴하고 센강 건너편의 아메리칸 라이브러리로 옮기겠다고 선언했다.
p107 확실히 마리퀴리는 프랑스의 이상적 여성상에는 들어맞지 않았다. 그녀가 직업적 성취에 더하여 피에르 퀴리와 (비극적으로 짧았을망정)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총명하고 건강한 두 딸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질시의 표적이 되었다
p124 피카소는 연인을 만나는 문제에 있어 수가 딸리는 적이 없었다
p127 달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소심했지만 가장 혐오스러운 주제에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음침하고 위험할 만큼 병적인 것을 묘사했고, 그런 것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다.
p130 대공황의 틀림없는 징조들이 늘어가자 전문가들은 계속하여 인플레이션 위험을 우려하며 금 본위제를 고수하는 한편 독일의 전쟁 배상금 체불에 불만을 터뜨렸고, 정치 스펙트럼의 양쪽 극단에서는 행동주의가 급속히 팽배했다
p132 역사가 유진 웨버가 지적했듯 이런 반유대주의는 "잠재적인 것으로, 도전받지 않을 때는 대체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쑤석여도 불씨는 금방 일어났다"
p138 마리 퀴리가 어느날 저녁 에브와 이야기하던 중 말한 대로였다. "우리는 이상주의에서 힘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설령 우리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해도 우리의 꿈과 열망을 높은 곳에 두게 해주니까."
p139 한 친구에 따르면, 조세핀에게는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면도 있었다. 그 여성은 조세핀이 약품과 의복, 식품, 장난감 등을 가지고 파리 빈민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고 전한다
p177 처음에는 파리가 그런 피난처가 되어줄 듯했다. 1933년 말까지 2만 명 이상의 독일인이 독일을 떠나 프랑스로 왔고, 1930년대말까지는 5만 명이상이 파리를 경유해 다른 나라로 갔다. 1933년부터 매년 8천 명가량이 파리에 정착했는데, 그중 3분의 1은 유대인이었다.
p179 블룸이 옳았다. 데아와 그의 추종자 다수는 순순히 파시즘을 받아들였고,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된 동안 부역자가 되었다
p193 그의 정치 성향이 어떠하든 간에, 1933년 말 살바도르 달리는 붓질 못지않게 자기 홍보에도 대단한 솜씨를 보였다
p216 피의 화요일 이후 2월의 소요들은 좌익의 협력을 촉박했을 뿐 아니라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기폭제로 작용했다.
p218 1995년, 그녀는 남편 피에르와 함께 팡테옹으로 이장되어, 오로지 자신의 업적으로 그 배타적인 안식처에 들어간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그러기까지는 60년 이상이 걸렸지만, 삶에서 그랬듯이 죽음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선구자였다
p221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들은 스트라빈스키 같은 전위적 음악가들을 환영하지 않았으며, 이에 그는 눈치 빠르게 무솔리니에게 더 열광적인 태도를 보였다.
p225 미국에서는 (율리시스의 최근 승소에도 불구하고) 북회귀선이 검열에 걸려 이후 1960년대까지 판매가 금지되지만, 밀러는 사기가 올라갔다.
p229 파리 최고 멋쟁이 그룹이 피의 화요일에 대해 보인 반응은 처음에는 심드렁한 것이었다.
p231 항상 직원들을 엄하게 다루어온 터였다. 급료인상? 노동자의 권리? 2월 6일은 샤넬의 생각을 한층 더 강화해줄 뿐이었다.
p243 의학적인 치료가 소용없으리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이본과 샤를은 오직 사랑과 다정함만이 필요함을 깨달았고, 그리하여 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다.
p262 역사가 필리프 베르나르와 앙리 뒤비프가 지적하듯이, "[프랑스에서] 실업의 첫 희생자는 하찮게 여겨지던 집단에서 나왔다." 즉 여성과 이민자들, 어느 쪽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이었다.
p273 미슐랭은 시트로엔이 강조하던 대로 디자인, 엔지니어링, 생산 전반에서의 고품질 전략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면에서는 검박하고 엄격하여 인건비를 줄이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직원은 주저 없이 해고했다.
p278 사르트르가 침체되어 있는 것보다야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했으나, 어떻든 불만스러운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사르트르는 훗날 "내 노이로제의 깊은 원인은 재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일종의 정체성 위기였다"라고 회고했다
p286 히틀러가 라인란트로 군대를 이동시키고 있다는 소식에 불안해하면서도,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독일과 싸우기보다 자기 재산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노동자들은 독일의 공격에 분개하면서도 나서서 무기를 들 뜻은 없었다.
p291 르노 못지않게 그녀도 자기 직원들이 그렇게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애를 먹었다. 훗날 폴 모랑에게 당시의 일을 털어놓으며, 샤넬은 직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더 자주 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p296 애국주의라는 측면에서도 스포츠 일반이 아직 정치화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1936년 하계 올림픽은 그 모든 것을 바꿔놓았으니, 독일 정부가 은밀히 뒷돈을 대어 선전 영화로 기획한 리펜슈탈의 올림피아에서부터 경기 내내 드리워져 있던 국가 간 경쟁의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이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p300 결국 스페인 공화국 지지자들이 지적했듯이, 스페인 공화국을 돕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진행 중인 내전에 강력히 개입하는 셈이 되었다
p304 겔혼은 정치적 행동주의자로 곤경에 처한 자들의 복지에 열정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헤밍웨이에게서 동지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p306 그런 여정에서 "우리 눈이 차츰 뜨이기 시작했다"고 지드는 훗날 회고했으며, 귀국 직후에는 친구 케슬러 백작에게 "지성의 자유는 독일에서보다 러시아에서 한층 더 끔찍한 탄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 괴롭힘을 참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p311 아버지 르누아르는 노년에 자본주의 자체보다 기계화에 반대했으며, 어린 쥘리 마네(베르트 모리조의 딸)에게 기계화의 병폐를 설명하면서 양말공장의 예를 들기도 했었다.
p320 비치는 여전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앙드레 지드 같은 헌신적인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따름이었다.
p326 사실 살랑그로는 적에게 생포되었고, 명예롭게 처신했으며, 독일군에 억류되어 혹독한 고생을 했다는 것이 군사 위원회에 의해 규명되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그를 사냥했고, 신문을 탐독하는 악착같은 독자들은 군사 위원회의 판결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p334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거만한 태도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그를 별로 환영하지 않았다.
p346 하지만 사단 안팎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처럼 끄덕없이 버텼고, 자기 연대에는 "항상 더"라는 그다운 구호를 내걸었다.
p352 그 무렵 스페인에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하나는 공화파와 프랑코 세력 간의 전쟁으로 공화파의 패색이 완연했다.
p354 장 르누아르가 부모 노릇을 하는 방식은 분명 비인습적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알랭은 자기 몫의 방황을 할 만큼 한 다음, 나중에는 하버드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UC 버클리에서 유명한 중세 영문학교수가 되었으니 말이다.
p361 그의 장례식에는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충실한 벗들이 참석했지만, 그가 오래 세월 후원했던 예술가들-특히 아리스티드 마욜-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드는 "교회에서도, 운구차를 따라 묘지로 가면서도, 케슬러가 평생 그토록 너그럽게 도와주었던 화가며 조각가들을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라고 썼다
p366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오랜 적이었으니, "블룸보다는 차라리 히틀러"라는 생각이었다.
p395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 자기 방어를 위해 이름을 모두 암호로 바꿔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꿋꿋이 계속해나갔다. "우리는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국인들은 그런 일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우익에서는 '좀 더 기다려보자'고 하고, 좌익에서는 '우리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데?'라고 할 뿐이었다"
p400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이 프랑스의 승리로 마무리된 덕분에 다 잘 풀린 듯 여겨지지만, 사실상 그 승리는 피투성이 난타전에서 프랑스가 좀 더 오래 버틴 데 지나지 않았다.
p406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의 게임의 법칙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시대의 피가로의 결혼과도 같다. 세련되고 무심하고 퇴폐적인 문명의 초상이다.
p411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음을 납득시켰다. 만일 히틀러에 맞서 무기를 들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모든 프랑스인이 히틀러를 위하여 무기를 들어야 하리라고 말이다. 그것은 결국 정치적 참여를 피할 길이 없다는 뜻이라고. 그녀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정치에서 발을 빼는 것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말이다.
p417 피카소는 그림 전부를 안전하게 보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아예 손을 놓아버리고 보르도 근처 바닷가 휴양지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마리-테레즈 발테르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딸과 합류했는데, 당시 애인이던 도라 마르도 함께였다.
p434 한 나라의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고서 불명예스러운 대기 상태와 방어 작전에 묶어두는 데는 크나큰 위험이 있다
p443 "우리는 너희를 포로로 잡을 시간이 없다"라고, 독일인들은 질풍처럼 달려가며 경멸 어린 음성으로 내뱉었다.
p456 파리로 돌아온 달리는 지도를 펴놓고 나치를 피하는 동시에 '미식의 즐거움'도 뉠 수 있을 행선지를 궁리했다.
p462 의회는 즉시 해산되었으며, 피에르 라발을 측근에 둔 페탱은 "인간의 타고난 평등이라는 거짓된 관념"을 거부하고 새로운 체제는 "사회적 위계질서"를 받아들일 것임을 약속함으로써 귄위주의적이고 반의회적인 내셔널리스트들에게 호소했다.
p469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미국에서 행한 연설 중 "우리는 대가를 불문한 평화란 도무지 평화가 아님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했던 에브 퀴리는 잠시 파리에 돌아와 가족과 작별한 후 (그들은 남기를 택했다) 즉시 출발, 독일 전투기들의 빗발치는 포화 속에 화물선을 타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p478 파리에 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전쟁 후 그중 많은 사람들, 특히 코코 샤넬과 장-콕토에게는 부역혐의가 묵직하게 걸리게 된다
p485 비치의 사랑하는 서점은 미국의 참전과 때를 같이하여 문을 닫았다. "내 국정의 유대인들과의 친분 때문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나치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라고 그녀는 훗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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