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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1_독후감

[2021-78] 세종의 하늘

by 반란을_꿈꾸며 2021. 8. 13.

 : 세종의 하늘

 : 정성희

 : 사우

 : 2021/07/27 - 2021/08/03

 

세종이란 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조선이란 나라의 정통성 확보가 중요했다곤 하지만 천문에 대해서 이렇게 방대하고 자세하게 공부하고 지시해서 우리나라의 천문학을 여러 단계 올린다.

이 책을 읽으면 이런 내용을 알게 된다. 

한국사시간에 이름만 외웠던 많은 천문 도구들 혼천의나 양부일구를 왜 만들었으며 어떻게 설치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천문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 팔도에 별을 관찰할 직원들을 보내고 언제 별들이 출현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이순지라는 천재 수학자를 통해 칠정산내외편이라는 조선에 맞는 달력을 만든다. 

제대로 된 천문도구를 만들기 위해 장영실을 1년동안 명나라에 유학을 보내 원나라때 만들어진 천문도구를 관찰하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천문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심지어 지금은 기술이 부족하고 연구할만한 사람이 없으나 미래세대를 위해 내용을 잘 관찰하고 잘 기록해놓으라고 지시하기까지 한다. 

지도자를 잘 만나니 천재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고 이는 조선의 과학기술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이후 꽉 막힌 성리학자들에 의해 조선전기때 개발되고 발전한 과학은 모두 사장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p8 세종은 명이 아닌 조선에 맞는 역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추진한 것이 간의대 건설과 칠정산내외편으로 대표되는 천문 프로젝트였다

p22 이성계는 천문관서인 서운관의 관원에게 고구려 천문도를 돌에다 새기게 했다. 천상열차분야진도라 불리는 천문도가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p26 태조 이성계가 고구려 천문도를 입수한 뒤에 가장 먼저 찾은 이가 류방택이다. 천문도가 세월이 오래되어 그 도수가 차이가 나므로 이를 새로 측정하여 수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조의 삼고초려로 류방택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에 참여하였다

p28 천문도에서 중성은 매우 중요하다. 중성이란 해가 질 때와 뜰 때 하늘 정남에 보이는 별을 말한다. 하늘 정남쪽을 다른 말로 남쪽 하늘 자오선 위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이를 천문학에서 남중이라 한다. 따라서 중성이란 남중하는 별이라는 뜻이다

p30 가로 122.8 센티미터, 세로 200.9 센티미터의 돌에 새겨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현재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볼 수가 있다

p34 태조 석각본은 1970년대 홍릉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 과학전시실 진열장에 보존되기까지 약 10년간 창경원 땅바닥에서 벤치 취급을 받았다

p42 과거 그리스 천문학자 히파르코스가 서기전 130년경에 황도상의 별자리를 12등분한 것과 오늘날 천체의 실질적인 위치는 다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과거의 별자리를 이용하여 여전히 점을 보고있다

p48 조선 태조 4년에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소주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 천문도이다

p55 태백성 외에도 새벽에 동쪽에서 보인다고 하여 계명성 혹은 샛별이라고도 불렸다. 저녁에 보일 때는 장경성 혹은 우리말로 개밥바라기별이라 했다

p62 에밀레 종처럼 사찰에서 치는 종이 중생을 개우치는 방편이었다면, 국가에서 치는 종은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였다

p82 태종은 누구보다 냉철한 인물이었지만, 자신이 저지른 과오 때문에 하늘의 재이현상에 민감했고, 그럴 때마다 두려워하며 근신하였다

p93 신하들이 열심히 일하는지 안하는지 몰래 지켜보는 일은 세종의 전대특허였다. 세종은 몰래 첨성대에 행차하여 천문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p99 노인성은 백두산과 설한점에서는 관측되지 않는 별이었지만, 제주도에서는 특정 시기에 볼 수 있는 별이었다. 윤사응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종은 뛸 듯이 기뻤다

p114 세조 쿠빌라이는 곽수경의 말대로 14명의 천문가를 전국에 파견하였다. 당시 세조 쿠빌라이가 파견한 천문가 중 한 사람은 고려까지 왔다. 원나라 천문가는 당시 고려의 북극출지(북극고도)를 관측하여 38도 소라는 관측치를 얻었다.

p114 곽수경이 이룩한 찬란한 업적 중의 최고봉은 수시력이라는 역법을 만든 것이었다.

p120 책력과 천문의 법은 쉽사리 자세히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계산법을 연구하여 초안을 작성해서 장래에 이를 잘 아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라

p133 장영실 일행이 보고 온 것은 1279년 원나라 천문학자 곽수경이 제작한 천문기기였다. 곽수경의 천문대인 사천대는 13세기 원나라 수도 북경에 세워진 세계 최대의 천문대였다. 당시 사천대는 현재 북경 건국문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p154 이천은 학문이 깊지는 않았으나 사물을 깊이 헤아리고 궁리하여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p169 조선시대 천문은 음양학, 수학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천문관서인 서운관이나 관상감은 천문은 기본이고 음양학과 풍수도 다루는 곳이었다.

p189 현재 만 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자격루는 세종 대에 만든 장영실의 자격루가 아니라 중종 대에 다시 만든 자격루이다.

p224 국립중앙박물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시계 잔편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해시계는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면, 현재는 일부분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