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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3_독후감

[2023-09] 한 컷 세계사

by 반란을_꿈꾸며 2023. 3. 3.

 : 한컷 세계사

 : 이성호

 : 해냄에듀

읽은기간 : 2023/02/14 -2023/02/23

 

이런 특색있는 책이 좋다.

세계사를 사진으로 설명하다니...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과 간결하게 그 시대를 설명하는 이야기라는 컨셉은 초보자나 청소년들에게 많이 도움이 될 것 같다.

한 컷 한국사보다 한 컷 세계사를 먼저 읽었는데 한 컷 한국사도 재미있을 것 같다. 

시간날 때 한 번 씩 넘겨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확실히 시대가 변해서인지 그림 또는 사진이 들어가야 책이 풍성해지는 것 같다. 

 

p15 현생 인류는 단 하나의 종 호모 사피엔스만 존재한다.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인류가 멸종하고 하나의 종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생존과 진화에서 매우 불리하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진화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별종들을 차별하지 않고 소중히 보듬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p23 길가메시는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돌판에 새기고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두렵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사랑하는 것이 행복을 누리는 비결임을 신화는 말하고 있다.

p25 문제는 범람기(8-11월)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점이다. 피라미드 공사는 바로 이 시기에 이루어졌고, 일거리가 없는 농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다. 피라미드 공사는 가혹한 노동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은 돈벌이기도 하였다

p27 예전에는 아리아인의 침입으로 모헨조다로가 멸망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환경 파괴에 주목하고 있다. 인구가 늘면서 집을 짓고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벽돌을 구워야 했는데, 땔감을 얻기 위해 인근 숲을 망가뜨리다 보니 홍수나 가뭄에 취약해졌다. 또한 계속되는 하천 제방 공사로 인더스강의 바닥이 올라와 결국 멸망하였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확장과 개발이 결국 모헨조다로를 죽은 자의 언덕으로 만든 셈이다.

p39 완적과 유령은 모두 위진 남북조 시대 죽립칠현에 속한 인물들이다. 대나무 숲에 숨어 상식에서 벗어난 기행을 일삼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술에 귀의하는 삶을 살았던 7명의 현인, 이들을 죽립칠현이라고 부른다.

p41 대운하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베이징은 초원길로, 장안은 비단길로, 항저우는 바닷길로 다시 연결되어, 중국이 동아시아 교역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되도록 도왔다. 대운하는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교역의 중심지를 연결하는 대동맥으로 기능하였던 것이다.

p45 돌궐 장수 톤유쿠크는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기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말도 남겼다. 이처럼 유목 민족에게 이동 생활은 그들의 정체성과도 같았다.

p69 서양의 사정을 알아볼 정보원이 필요하였던 에도 바쿠후는 나가사키 항구에 인공섬을 건설한 후, 네델란드 상관을 지어 이곳에서만 제한적으로 교역하게 하였다. 이 인공섬이 바로 데지마이다.

p85 아바스 왕조는 탈라스 전투에서 이겨 당의 서진을 저지하고 동서 교역의 중계자 위치를 지켜냈지만, 우마이야 왕조처럼 이슬람 세계 전체를 하나로 다스리지는 못하였다. 우마이야 왕조의 후손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왕조를 재건하여 자신이 진짜 킬리프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p87 넓어진 이슬람 제국 곳곳의 무슬림들이 메카로 오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막이나 초원 지대에서 방향과 시간을 알려면 하늘의 별을 봐야 했다. 이에 따라 지리학과 천문학이 자연스레 발달하였다.

p89 이들은 막강한 전투력으로 망치라는 별명을 얻었던 프랑크 왕국의 카룰로스 마르텔에게 크게 패하였다. 카롤루스 마르테른 이슬람 군대를 저지한 공으로 크리스트교 세계의 구원자가 되었고, 그 명성은 아들 피핀 3세, 손자 카롤루스 대제에게까지 이어졌다.

p105 힌두교에서는 수많은 신을 섬기지만, 그중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를 가장 중시한다. 특히 비슈누는 세상의 질서가 무너질 때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유지하는데, 힌두교는 석가모니도 비슈누의 여러 모습 중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p109 무굴 제국의 포용성은 아버지 샤자한을 쫓아내고 황제가 된 아우랑제브 때 사라졌다. 그는 정복전쟁으로 무굴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지만, 인두세를 부활하고 개종을 강요하였다. 이런 억압 정책은 그의 사후 무굴 제국이 분열하는 계기가 되었다.

p123 로마인들은 길은 직선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산에 터널을 뚫기도 하고, 골짜기에 높은 다리를 놓기도 하였다. 도로 양옆으로 배수로를 만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과실수를 심어 그늘과 비상식량까지 마련하였다. 로마인이 만든 도로의 길이는 3세기말까지 약 80,000km에 이르렀다.

p127 황후의 확고한 태도에 정신을 차린 유스티니아누스는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가 되찾았던 옛 로마 제국의 영광은 그의 죽음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탈리아는 다시 이민족의 손에 넘어갔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영토를 빼앗았다.

p129 800년 12월 25일,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성탄절 미사에서 교황 레오 3세는 카롤루스의 머리 위에 서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 주었다. 오래전 사라진 서로마 황제가 다시 탄생한 순간이었다.

p139 위기에서 벗어나자 샤를 7세는 생각을 바꾸었다. 잔 다르크가 수도 파리를 되찾기 위해 전투에 나섰을 때, 샤를 7세는 오히려 공격을 중단시키고 군대를 해산하였다. 아무런 도움 없이 전투에 나선 잔 다르크는 포로로 잡혀 영국에 넘겨졌지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구하지 않았다.

p149 위그노가 왕이 될 수는 없다며 카톨릭 측이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앙리가 카톨릭으로 개종하겠다고 발표하자 더 이상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결국 나바르의 앙리는 앙리 4세로 즉위하였다. 앙리 4세는 1598년 낭트 칙령을 발표해 위그노에게 예배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p155 이 선언의 배경에는 1791년 국민 의회가 새롭게 만든 헌법이 있었다. 새 헌법은 여성의 권리를 매우 제한하였다. 특히 가난한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남성 시민과 비교할 수 없이 낮았다. 이러한 불평등에 반발하여 올랭프 드 구주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p165 산업 혁명 이후 등장한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고 나섰고, 1838년에 21세 이상의 모든 남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라는 차티스트 운동을 전개하였다.

p169 미국 국립 공원은 눈물의 길이라는 역사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9개 주에 걸쳐 뻗어 있는 이 길은 고향을 강제로 떠나야 했던 체로키 원주민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p183 이토록 정의롭지 못하며, 수치스러운 전쟁으 ㄴ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도 나왔지만, 이후 표결에서 아홉 표 차로 에산안이 통과되었고, 영국은 전쟁을 개시하였다.

p189 의화단은 외세 없는 세상을 꿈꿨지만, 도리어 열강의 중국 간섭을 더욱더 심화시켰다. 청 정부 역시 의화단을 통해 서양에 대항하려 하였지만, 열강에게 여러 이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의화단 사건은 10년 후에 일어날 신해혁명을 부채질한 건 아니었을까?

p197 일본에서 근대 일본의 사상적 선구자로 칭송받는 요시다 쇼인은 “일본이 열강에 잃은 것을 마회하려면 훗카이도와 오키나와를 차지하고 조선과 만주를 침략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지인에게 보냈다.

p203 인도 북부에 있는 잔시 지역의 영왕 락쉬미바이가 이끄는 저항군의 반영 항쟁은 인도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전국 전신망과 앞선 무기를 갖춘 영국군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세포이 항쟁은 2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넘어 여러 계층이 힘을 합해 외세의 지배에 맞선 경험은 이후 인도의 민족 운동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p229 애국심으로 가득한 남성들은 꽃장식을 한 열차에 올라타 줄줄이 전선으로 떠났고, 공장에는 여성들이 투입되어 밤낮으로 무기를 생산하였다. 전례 없이 거대해진 전쟁의 규모와 강도를 지탱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힘을 동원하는 총력전이 펼쳐진 것이다.

p239 평생을 바쳐 장애인, 여성, 노동자 등 소외된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던 헬렌 켈러는 자국 내의 불평등과 착취 구조에 무관심해 온 미국 정부가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 수호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전쟁에 가담하려는 진짜 이유를 꿰뚫고 있었다.

p247 1919년 2월 19일, 프랑스 파리의 외곽에 있는 베르샤유 궁전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뒤처리를 위한 승전국들의 파리 강화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파리의 다른 한편에서는 15개국 57명의 대표가 참여한 가운데 듀 보이스를 의장으로 하는 제1회 범아프리카 의회가 열렸다.

p255 난센은 “난민을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값진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국제 사회를 끊임없이 설득하였다.

p263 나치당원이었던 란트페서는 이 당시 어떻게 전체주의의 최면으로부터 깨어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그의 사랑스러운 아내가 독일 전체주의에서 극도로 혐오하고 탄압하던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

p265 더 큰 인정을 받고픈 욕망은 어린이들을 독재자의 눈과 귀로 만들었고, 유대인을 숨겨준 자신의 친부모까지 고발하게 하였다. 어른이 되어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었던 어린이들이 역설적이게도, 전체주의 체제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

p267 조선의용대와 타이완 의용대는 활동 지역이 달랐지만, 서로 긴밀하게 교류하는 돈독한 사이였다. 1939년 10월 10일 조선 의용대 창립 1주년 기념식장에 타이완 의용대가 보낸 축하 현수막이 걸렸고, 1940년 3월 1일 조선 의용대의 기념행사에는 리요우팡이 참석하였다. 조선 의용대는 타이완 의용대에게, 3.1 소년단은 타이완 소년단에게 각각 비단으로 만든 깃발 한 폭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p269 저자 프란시스 골튼은 바람직한 혈동이 덜 바람직한 혈통보다 더욱 신속하게 퍼져나갈 수 있도록 도모하는 과학이라는 용어로 우생학을 규정하였다. 골튼은 19세기 말 영국에서 탄생한 이 사이비 과학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 학살로 이어질 거라 생각하였을까?

p283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이 실요주의 정책으로 인기를 얻자, 마오쩌둥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이 사회주의가 아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을 듣고 격앙된 젊은이들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때부터 10년간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광풍의 정치 운동이 전개되었다.

p287 1964년 통킹만에서 미국 전함이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다는 구실로 미국의 군사 개입이 본격화되었다. 미국은 이 전쟁에 50여만 명을 파병하였고, 무기와 물자에서 북베트남을 압도하였다. 한국도 미국을 도와 32만 명을 파병하였다.

p289 68운동은 젊은이들이 기성 권위에 저항하며 공동체 정신을 강조한 운동이었다. 그동안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 흑인, 제3 세계 민중이 점차 전면에 드러났고, 이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가 68 운동의 기본 정신이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과 인종 차별, 성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이 부모 세대가 하지 말라고 한 것들에 대한 저항도 활발하였다.

p291 1963년 8월 28일, 20만 명이 넘는 흑인들이 인종 차별 철폐를 외치며 워싱턴까지 행진하였다. 이날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내 아이들 네 명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이라는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1968년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살당하였다.

p295 회의 마지막 날 참석자들은 지구는 하나라는 제목으로 인간 환경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이후 제1차 유엔 인간 환경회의가 열린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로 지정되었다.

p299 사고가 일어날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 30km 이내는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고, 수십만 명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p299 201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악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체르노빌에서는 모든 것 후의 삶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없는 물건, 사람 없는 풍경… 목적지 없는 길, 목적지 없는 전선… 또 생각해보면 이것은 과거일까, 미래일까?”라는 독백 인터뷰를 하였다.

p307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여러 가지 규제를 없애는 것을 지향하였다. 또한 사회 복지 예산을 줄이고, 수도, 전기, 가스 등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기관들을 민영화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자본, 노동 등이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하였다.

p313 매주 금요일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남녀노소가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8월 매주 금요일에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