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난처한 미술이야기7
작가 : 양정무
출판사 : 사회평론
읽은기간 : 2023/03/05 -2023/03/12
믿고 보는 양정무 교수님의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
7권을 산지 오래됐지만 이제야 읽었다.
그동안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너무 늦게 읽었다.. 책에게 미안해진다.
르네상스 후기가 이 책의 주제다.
르네상스가 얼마나 대단한 시기였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매너리즘 시대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면벌부의 판매라니.. 종교가 이렇게까지 타락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그런 돈이 모여서 베드로 대성당이라는 걸작이 나왔다는 아이러니도 느끼게 된다.
신을 모독하는 방법을 통해 신을 찬양하는 작품이 만들어지다니...
인류의 역사는 아이러니와 비틈의 연속이다.
이번에도 멋진 책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p6 미술의 황금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시작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손에 의해 완성되지만, 1520년 라파엘로의 때 이른 죽음과 함께 일찍 마감됩니다. 길어야 30년 정도 지속된 미술의 시대는 짧은 시간 속에도 놀라운 대작들을 낳으며 동시에 강렬한 미술에 대한 신화까지 만들어냅니다.
p32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은 단기간에 끝나는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본당만 해도 1506년에 시작해 1626년까지 120년이 걸렸고 대성당 앞쪽의 광장을 정비하는 데만 또다시 50년이 걸렸습니다.
p36 로마의 거대한 변화는 15세기 초반 교황 마르티노 5세가 아비뇽에서 로마로 다시 돌아오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때부터 교황들은 도시를 재건축하는 것이 로마의 권위를 세우고 교회의 권위를 세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로마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p61 카를 5세가 친가만이 아니라 외가 쪽으로부터 상속받은 영지만 대략 70개가 넘으니까요. 이렇게 그는 고대 로마를 능가하는 대제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p89 이 시기 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책이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거나 책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 넘쳐나죠
p100 결국 교황의 길의 정점에는 미켈란젤로가 있는 셈입니다. 카피톨리노 광장에서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 이 길의 정점에 그의 작품이 자리하는 거지요. 그야말로 위대한 로마를 더 위대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미켈란젤로죠
p129 재밌는 점은 작업 순서에 따라 인물의 모습도 변한다는 것입니다. 초반에 그려진 인물들은 정적인 반면 점차 제대화 쪽에 가까워질수록 미켈란젤로 특유의 큰 움직임이 나타납니다.
p147 브라만테는 재능있고 성격도 좋은 라파엘로를 교황 율리오 2세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을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을 중심에 놓고 미켈란젤로와 브라만테, 그리고 라파엘로까지 3명의 작가가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된거죠.
p150 템피에토는 산 피에트로 인 몬토리오 성당 안에 있는데, 이 성당은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된 곳에 지어졌습니다.
p159 노력하는 천재가 더 무섭다고 하지 않습니까? 라파엘로는 거장 앞에서 좌절하거나 성급히 도전해서 충돌하기보다는, 그들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중 뛰어난 점을 적극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p169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 너무나 유명하다 보니 교황 집무실에 이 그림 하나만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방의 4면뿐만 아니라 천장에까지 벽화가 들어가 있어요. 결과적으로 라파엘로의 그림으로 가득 찬 방이 교황궁에 모두 4개나 있는 거죠
p194 하이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 원숙하게 자리 잡는 시기, 예를 들어 최후의 만찬이 만들어진 때부터 시작해서 라파엘로가 사망하는 1520년까지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 르네상스는 대략 30년 정도입니다.
p211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연구한 후 지붕 선, 본체, 지붕, 앞면의 건축가가 전부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미켈란젤로는 판테온을 위대한 건물이라고 인정했지만, 동시에 이 건물이 지닌 여러 건축적 구조나 결함의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비판했어요. 이러한 비판 정신이 바로 르네상스입니다.
p223 콜로세움의 아치 크기는 폭이 4.2미터고 높이가 7미터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높이가 7미터면 사람 신장의 세 배가 넘죠. 흥미롭게도 르네상스 이후 로마의 팔라초는 이 콜로세움과 비슷한 크기의 대형아치를 사용합니다.
p249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 작품에 등장하는 과일은 육체와 성의 쾌락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어요. 과일을 베어먹었을 때의 달콤함은 육체의 쾌락으로 비유하기 충분하죠
p267 시뇨렐리의 그림에서는 죄인들이 악마와 한 판 붙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근육질이잖아요. 반면 보스의 그림 속 인물들은 악마의 장난감밖에 안될 정도로 나약해 보이죠
p278 이렇게 순수한 믿음을 이용한 일종의 돈벌이가 공공연하게 벌어졌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면벌부 판매입니다.
p298 성상 파괴 운동의 불길은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신교지역에서 종교미술은 굉장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어느정도 종교미술의 역할을 인정한 루터와 달리 칼맹 등 보다 엄격한 교리를 추종했던 지역에서 종교미술은 상당히 제한됐어요.
p315 원작자인 루카스 크라나흐 역시 이 그림의 의미를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1529년부터 20년 이상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죠. 신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크라나흐의 공이 크답니다.
p327 크라나흐의 그림 속 큐피드는 자기 손으로 안대를 벗고 있습니다. 이는 몽매함을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이제는 세계를 자신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죠
p341 1527년 5월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고 이듬해 2월까지 이 도시를 잔인하게 유린하지요
p354 미켈란젤로는 위로 갈수록 벽체를 두껍게 쌓아 그림 앞에 서면 상단에 자리한 인물들이 우리 쪽으로 쏟아지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줍니다. 어쩌면 지구 심판의 날에 벌어진 끔찍한 공포의 사건을 강렬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단일한 화면에 수많은 인물을 휘몰아치듯 구성하고, 비례까지 역으로 나타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396 피렌체 시민들은 앞서 피렌체 정치를 좌지우지한 메디치 가문의 독재를 비판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 상 제작을 의뢰하지요 다비드가 거인 골리앗을 무찔렀듯 메디치 가의 독재를 끝내고 자유를 찾았다는 의미를 조각상에 담으려 합니다 .
p415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대부분의 조각상은 신화나 성경, 혹은 역사 속에 등장한 인물들이 주인공이지만 사실은 피렌체 지배자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거죠
p418 메디치 가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떠나서 이런 미술 컬렉션 덕분에 오늘날 피렌체의 예술적 명성이 자리 잡았다는 점은 존중할 만합니다. 한편 우피치 미술관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도 귀중하지만 흥미롭게도 건축 자체 역시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어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p421 1510년을 전후로 이들이 이룩한 하이 르네상스 시대의 업적은 후대 미술가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나오는 미술 경향을 매너리즘이라고 하죠. 이런 의미의 매너리즘은 1520년부터 1600년까지 최대 80년의 시기를 가리키는 미술 용어가 됩니다.
p442 여러 신화적 인물과 상징들이 중첩되어 있기에 수수께끼 같으면서도 이를 하나씩 해석하면서 즐거움을 얻는 거죠. 누구나 한눈에 다 이해할 수 있는 미술보다는 그리스, 로마 고전에 대한 지식이 있는 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유희와 상징으로서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447 바사리 회랑이라고 불리는 건물이지요.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아래쪽 피티 궁전에서 위쪽의 우피치 미술관을 거쳐 팔라초 베키오까지 연결하는 회랑입니다.
p452 이제 광장에는 지배자를 미화하는 노골적인 조각상을 세우고, 지배자의 정원 안에는 극소수에게만 허용된 귀족적인 취향을 반영한 미술품을 채웁니다.
p456 그리스,로마 신화를 모아 놓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보면 대홍수 이후 황폐해진 땅 위로 던진 돌들이 인간으로 재탄생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을 활용해 이런 신화속 이야기를 실제로 구현한 것으로 보여요
p478 다시 만들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적어도 베네치아 건축의 흐름을 바꾼 것은 사실입니다. 신소비노는 베네치아의 건축을 중세 고딕 양식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전환시킨 거죠
p484 티치아노는 1516년부터 이 제대화를 그려서 캉브레 전쟁이 끝난 1518년에 완성합니다. 하늘로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를 그린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볼 수 있지요
p490 풀밭 위의 콘서트는 인물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어떤 이야기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고 평화롭고 신비한 자연의 분위기라는 정서만 남는 거죠. 이전까지는 특정 인물의 초상화나, 신화 혹은 성경 속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려서 전체 서사를 상상케 하는 그림이 많았기에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그림은 새로운 시도였죠
p493 비너스는 애칭으로 일종의 가림막 같은 표현입니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그 당시 성적으로 분방한 베네치아 상류층의 문화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누드화의 전형이 된 작품이에요. 여기에 비너스라는 이름을 추가하면서 세속적인 느낌을 신비로움으로 상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p496 티치아노는 이런 베네치아 회화 특유의 빛과 색채의 표현력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으며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추앙받았습니다. 라파엘로처럼 생전에도 사후에도 영광을 누렸죠. 게다가 장수하기까지 했으니 화가로서는 가장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어요
p502 르네상스 시대 군주에게 요구되는 요건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군사 지도자이면서 동시에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신사의 모습이라는 것을 잘 간파했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연출한 겁니다.
p513 그만큼 종교재판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종의 자유도시였던 베네치아조차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엄격해진 종교미술의 기준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던 거죠
p520 당시 베네치아의 미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화가가 베로네세라면 건축에서는 팔라디오를 빼놓을 수 없죠. 그는 방금 보았던 빌라 바르바로 뿐만 아니라 베네토 지역에 대략 22개의 빌라를 설계했습니다.
p526 팔라디오가 남긴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는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입니다.
p531 영국에서 권력을 잡은 휘그당은 바로크 양식이 지나치게 화려하다며 이를 배제하고, 대신 단순하고 합리적인 고전 양식의 팔라디오 건축을 채택합니다.
p534 새로운 건축 양식이 등장해 다른 건축 양식과 경쟁하고, 한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는 데는 단순히 미적인 가치나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맥락이 작동하지요. 그렇기에 서양미술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어떤 양식이 경쟁했고 채택됐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결국에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독후감 > 2023_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3-13]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 (0) | 2023.03.21 |
---|---|
[2023-12]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0) | 2023.03.20 |
[2023-10]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0) | 2023.03.07 |
[2023-09] 한 컷 세계사 (1) | 2023.03.03 |
[2023-08]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2) | 2023.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