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작가 : 마틴 푸크너
출판사 : 어크로스
읽은기간 : 2024/05/20 -2024/06/02
세계사를 통사로 보여주는 책들은 많다..
최근들어는 옥스포드 세계사나 녹색세계사, 대세 세계사처럼 각론으로 가기보다는 컨셉을 잡아 세계사를 읽도록 하는 책들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다.
이 책은 컬처를 중심으로 세계사를 써내려가는데 도서관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 도서관은 여러 문화의 혼합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문화의 원조가 그렇게 의미있는 것이 안니라고 주장한다.
문화라는 것이 결국 혼합되고 개선되는 것이지 최초라는 것이 후대에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문화의 도서관과 문자에 대한 문화전파에 대해서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에 BTS나 싸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베스트셀러에 한류문화에 대한 내용이 나오니 반갑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문화가 이정도로 연구대상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한 국가 지도자 빼고는 다 좋아지고 있다..
p18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굴 속 그림과 상징, 의식으로 시작된 것이 다른 관습으로 발전했다. 노하우가 늘어나면서 인간은 거주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중 일부는 피난처로 사용했지만 일부는 의식을 행하고(사원과 교회), 공연을 하고(극장과 공연장), 이야기를 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방문했다
p55 다른 문화를 차용하는 방식의 중요성은 과거를 차용하는 방식, 즉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네페르티티와 아케나톤은 왕의 계보에서, 조각상에서, 다른 모든 기록에서 삭제되어 거의 잊혔다.
p57 수많은 유럽인 이집트 학자들은 식민국의 힘을 이용해 발굴한 유물을 도굴꾼처럼 유럽 박물관으로 보내고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고, 보존을 위해서였노라고 정당화했다.
p84 미래와 대화하고 싶은 모든 이를 위한 교훈이 있으니 내구성이 좋은 재료로 관심을 끌만한 것을 만들어라. 그러면 미래의 통치자들이 그것을 보존할 테고 후대가 그 기원과 역사에 호기심을 가질 것이다.
p108 폼페이가 마치 타입캡슐처럼 제공하는 단면이 너무나 이례적이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폼페이 선입관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서기 79년 로마의 일상에 대해서 아는 것 대부분이 이 지방 도시 하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폼페이만 보고 로마 제국 전체를 추론할 경우 오도의 가능성이 있다.
p121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아스를 선택함으로써 귀종한 것을 얻었다. 바로 그리스와의 거리감이었다. 그는 로마의 선사 시대를 그리스 선사 시대에 봉합하는 동시에 이야기의 짜임에 새로운 실을, 그리스와 관계없이 트로이와 로마를 연결하는 실을 엮어 넣어 승자인 그리스를 로마 건국이라는 드라마의 구경꾼으로 만들었다
p133 문화 이동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힘, 즉 수입된 문화의 머나먼 기원에 대한 유혹이 현장을 인도로 이끌었다. 외국에서 수입된 문화에 매료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아는 것이 진짜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단편적이고 걸러진 것이 아닐까. 시간과 공간을 거치며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p142 오늘날에도 표지에서 번역가 이름이 빠지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마치 우리는 항상 원본에 접근할 수 있으며, 책은 개개인의 천재가 만드는 것이고, 문화 매개자의 도움은 필요없다고 믿고 싶어하는듯하다. 우리는 번역가 덕분에 다양해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때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번역가의 노고에 모든 문화가 의지하고 있으므로 이런 태도는 더욱 놀랍다.
p151 무엇보다도 시는 사교의 일환이었다. 종종 사람을 통해 특정 상대에게 시를 보냈는데 이때 받은 사람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답해야 했다. 중국 고전 시를 교묘하게 암시하거나 인용한 다음 그 시를 살짝 비트는 짧은 구절을 덧붙여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하는 기술이었다
p160 엔닌으로서는 불교 예술 파괴가 가장 안타까웠다. 그들은 불상에서 금을 벗겨내고 동과 철로 만든 불상을 부수어 무게를 달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 땅의 청동불, 철불, 금불에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p168 그런 주장은 편리하게도 모든 것이 어딘가에서 왔음을, 발굴되고 차용되고 옮겨지고 구매되고 도난당하고 기록되고 복사되고 종종 오해받는다는 사실을 잊는다. 무언가 본래 어디에서 나왔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울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이다.
p175 세계 최초의 도서관 중 하나는 아시리아 왕 아슈르바니팔이 니네베에 세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로 건설한 바그다드에 과거의 문서 기록을 보존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야신 찬 궁전 도서관 지혜의 창고가 포함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p179 바그다드 학자들은 멀리서 온 지식을 추구하면서 선지자 무함마드가 했다는 유명한 말을 따르고 있었다. “멀리 중국에서 왔을지라도 지식을 추구하라. 지식 추구는 모든 이슬람교도의 종교적 의무이다”
p214 에티오피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라스타파리아니즘은 때로 잡탕이나 온갖 관슴이 섞인 잡동사니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 운동은 고대 에피오피아처럼 문화 전이와 융합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로 보아야 한다.
p222 샤를마뉴가 추진했던 문화 부흥 프로그램에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너무나 중요한 움직임이었기에 지금도 종종 카롤링거 르네상스로 불린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재탄생이라기보다 자신의 왕국을 로마 제국의 역사와 연관시키려는 샤를마뉴의 전략적 결정에 가깝다
p240 교황은 대대로 이 문서를 이용해서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했지만 로렌초 발라 사제 등문헌학에 통달한 사람들에게는 이 문서가 수상쩍어 보였다. 그래서 발라 사제는 증여 문서를 엄밀하게 분석했고, 그의 추론을 이해할 수있는 사람들에게 해당 문서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가 아니라 그 몇백 년 후에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p253 이야기를 두고 싸웠다는 것은 아즈텍족이 과거를 지울 뿐 아니라 다시 쓰고 싶어 했다는 뜻이다. 아즈텍족은 옛 문명의 책을 태우는 대신 새로운 책을, 그들의 역법(읽는다는 단어에 게산하는 뜻도 있다)과 그들의 신, 그들의 신화, 그들의 역사를 적은 책을 만들었다.
p263 뒤러가 문화적 맥락이 완전히 제거된 이 물건들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고도로 발달된 장인의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 자신의 무지에 대한 겸손함이었다. 따라서 그는 고귀한 야만인이니 피에 굶주린 식인종이니 하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진부한 표현에 휘둘리지 않고 이렇게 멋진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유럽의 일류 예술가가 드물게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메소아메리카의 고도로 발전된 예술과 상호적응하며 그 진가를 알아보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p269 이러한 설명은 아즈텍족이 몰락하기 전에 역법과 역사, 신화를 기록하던 복잡한 그림 부호로 쓴 책들과 전혀 달랐다. 복잡한 쓰기와 읽기 지식은 차츰 잊혔고, 아즈텍의 책은 대부분 불에 타거나 사라졌다. 테노치티틀란이 파괴되면서 극소수의 책만 남았다.
p272 우리는 아주 먼 과거의 물건이 아니더라도 원본을 도서관과 미술관에 보존하는 일에 계속해서 상당한 자원을 쓴다. 대량생산이 쉬워지고 널리 퍼질수록 원본은 더욱 귀중해지는 듯하다.
p291 우스 루지아다스는 수많은 선원이 앓다가 죽기도 하는 괴혈병을 포함해 긴 항해의 세세한 일상을 언급한 최초의 서사시다. 선원들은 몰랐지만 괴혈병의 원인은 비타민C 결핍으로,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항해하면서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발병했다. 괴혈병은 피로, 메스꺼움, 설사, 발열로 시작해서 잇몸 부종으로 이어졌는데 카몽이스는 이 모든 과정을 서사시에 담았다.
p300 우스 루지아다스가 포르투갈 제국의 몰락에서 어떤 역할을 했든 이 작품은 의미 만들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과거를 이용해 현재를 정당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무지와 폭력으로 다른 문화를 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문학의 힘을 이용해 독자를 자극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인쇄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p314 행동과 마찬가지로 사상 역시 의도하지 않았거나 희미학만 인식하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자연권 사상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독립 선언에 서명한 사람들 중에서 자연권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여성과 노예에게 적용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p320 마담 조프랭은 주목받기를 원하지 않았고 보수적 견해를 가졌으나 당시의 가장 급진적 사상가들을 양성하게 되었다. 그녀의 살롱은 자유로운 사상의 요새로 알려졌다.
p325 노예 제도가 잔인한 것은, 노예 감독과 주인이 비인간적이라서가 아니라 경제 체제가 한 집단의 착취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었다.
p327 신속한 군사적 해결이 불가능해지자 나폴레옹은 외교적 방법을 시도하며 루베르튀르에게 안전을 약속할테니 프랑스에 오라고 제안했다. 루베르튀르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나폴레옹은 약속을 어기고 그를 체포했다. 루베르튀르는 1803년에 프랑스 동부 포르 드 주에 갇힌 채 사망했다.
p336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으므로 슐리만은 고고학자로서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는 곳곳을 파내느라 고대 유적지 대부분을 파괴했고, 오늘날의 고고학자들은 여기에 슐리만 참호라는 씁쓸한 이름을 붙였다.
p371 두 항구를 통해 온갖 상품이 수출되어 일본 제품에 대한 서양이 관심을 충족시켰다. 그중에서도 다색판화가 무척 눈길을 끌었다. 우아한 구도와 눈에 띄는 색상, 독특한 주제가 서양인의 눈에는 전형적 일본 양식으로 보였다.
p376 페놀로사의 위치는 무척 모호했다. 일본 전통예술의 저평가를 초래하는 외국 사상 유입에 일조했고 밤에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방법으로 그러한 저평가에서 이익을 얻었다.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보존에 관심을 가지고 미술관을 지었으며 과거를 다루는 새로운 과학을 일본 예술에 적용하여 그 위상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일본에서 존경을 받았다.
p411 소잉카와 말을 들어라 이 둘은 문화가 순수할 때보다 혼합되었을 때, 혼자 갇혀 있기보다 문화적 형태를 차용할 때 번성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p421 우리는 국부 펀드가 뒷받침하는 가장 안정적 민주주의 국가의 지원을 받아 멋진 도서관을 새로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환경 변화의 산물인 아주 작은 바이러스가 여행을 비롯해 많은 것들을 중단시킬 수 있다.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고 문화란 기껏해야 세대가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수선해야 하는 끊어진 사슬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p426 이 뮤직비디오는 천연덕스러움, 유쾌하게 활용한 저속함, 엉뚱한 장소에서 커피를 마시는 광경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몸을 흔드는 남성의 다리 사이에 엎드린 싸이의 모습 등 재미있는 세트 장면들 덕분에 유튜브 최초로 10억 뷰를 돌파했다.
p426 한류가 이토록 많은 청중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처음부터, 록, 재즈, 레게, 아프로비트 등이 뒤섞인 스타일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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