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불편한 한국사
작가 : 배기성
출판사 : 블랙피쉬
읽은기간 : 2024/11/02 -2024/11/09
제목과 다르게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하려면 자랑스럽던 우리나라의 역사가 사실은 거짓이라든가, 일본의 임나일본부가 사실은 맞는 것이라든가 이래야 불편할텐데, 그런 내용은 사실 없었다.
대부분 조금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던 이야기들이라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제목에 속아서 별점을 좀 낮게 주었다.
역사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엮어서 읽어도 좋고, 통사로 읽어도 좋다.
무언가 내 삶에 깨달음이 있는 영역이라 역사책을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즐거웠다.
p29 수나라는 300만 명 이상 동원한 AD 612년의 대전쟁에서 무려라 하나를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얼핏 보면 매우 초라한 성적표지만, 길게 보면 다르다. 이는 고구려로부터 석탄 화력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수나라 다음에 올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결국 패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고구려는 612년에 무려라를 빼앗긴 후, 56년 동안 무려 5번의 대전쟁을 겪을 후에 멸망한다.
p46 발해와 당나라의 관계는 견원지간이었다. 앞서 고선지 장군 등 무예에 능한 사람들을 따로 1만 명이나 형성해 저 멀리 서역에 원정 보낸 것도, 또한 약 4만 명 정도 되는 백제, 고구려 유민들을 저 멀리 사천성이나 운남성에 내려보낸 것도, 모두 신흥국 발해, 즉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과 연합하지 못하게 하려는 당나라의 치밀한 작전이었다.
p63 동북 9성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쯤인가? 9개의 군진을 설치했다면 어디 어디가 9성인지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 역사학계는 아직도 확정을 짓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현재 동북 9성의 소재지 대부분이 우리의 적대 국가인 북한 땅이라는 점이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 스스로의 자학 사관이다. 우리 역사를 항상 과소평가하고, 삼국 통일 이후의 우리 역사는 중국 땅을 조금이라도 침범해서는 안되며, 특히 근현대 이후로는 과거의 역사라 할지라도 한반도 안에서 조용하고 얌전하게 있어야 한다는 희한한 논리 때문이다.
p79 후일 19세기 초엽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은, 조선 땅에서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 흑산도에서 글공부한다는 사람조차 주자 성리학을 놓고 공부한다는 소리에 “주자는 정말 힘이 세구나”라고 자조 섞이 비평을 내놓을 정도로, 조선에서는 주자 성리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관직에 나갈 수도 없었고, 사문난적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p90 선조가 즉위한 직후, 이이는 33세의 한창 젊은 청류 선배로서,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정병 10만 양병설’이다. 군사를 양성하는 데 그 윤원형의 재산을 쓰자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전하, 윤원형의 재산이 왕실로 귀속되어야 한다. 신하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같은 논쟁은 지금 하등의 쓸모가 없는 논쟁이옵니다. 이로써 정병을 양성하여, 유사시를 대비한다 하면, 전국의 인구조사를 다시 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유랑민들을 다시 세금을 내게 하는 양민으로 돌릴 수 있사옵고, 또한 나라의 제조업을 무기로 만드는 공업으로 할 수 있어 조선의 문약함을 돌볼 수 있나이다.”
p102 1593년과 1594년의 머리글자를 딴 계갑 대기근. 1592년에 전쟁으로 전국의 농토가 황폐화되니 농사를 하나도 짓지 못하고,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유랑민이 되니 어찌 흉년이 들지 않겠는가! 도제찰사 오리 이원익의 불길한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져 1593-1594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최악의 대기근에 시달렸다.
p109 남해 바다를 지킬 수 있는 장수는 이순신 제독 말고는 없사옵니다. 원균은 빼고 말하시옵소서.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따. 2대 199의 대결이었다. 2는 오리 이원익과 좌찬성 정탁 그리고 나머지는 국왕을 포함한 문무백관 전체이다.
p122 이원익은 붕당을 정말 싫어했다. 그의 스승 율곡 이이와 비슷했따. 그렇지만 붕당으로 굳이 치자면, 남인에 속했다 한다. 실은 이원익 정승은 특정 붕당 모임에 나간 적도, 자신이 남인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지 싶다. 그런데, 자신의 필생의 업적인 대동법의 완수를 승계해야 한다는 목적의식하에 후계자를 찾을 때에, 그는 김육을 강력히 천거했다.
p146 이 영조라는 임금은 진정한 사이코패스였다. 이제부터 또다시 그의 광기가 시작된다. 약 60여 명의 소론 학자들이 참형을 당했다. 양명학자 이광사는 이에 연루되어 종신 유배형에 처해졌다. 그의 아내는 두 아들과 어리디어린 아기 딸을 남겨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p152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한 전통주의 종류는 영조의 뻘짓거리 한 방에 크게 줄었고, 추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1916년 조선총독부의 주세령에 따라 소규모 양조장은 모두 없어졌다.
p178 우리에게 알려진 판소리 여섯마당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는 1840년대에서 1850년대 사이에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신재효가 개작, 정리한 것이다. 창작한 것은 아니고, 옛부터 전해 내려오던 판소리라는 장르를 네 가지 장르(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로 4대 법례를 마련한 음악 이론가라고 하면 맞겠다. 그러니까 이 판소리 장르는 서양 음악으로 치자면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보다도 훨씬 현대 음악이다
p191 조선의 19세기를 돌이킬 때 가장 아까운 3명이 있다. 최시형, 전봉준, 김대건이다. 앞의 2명은 동학의 인재이고, 뒤의 1명은 서학의 인재이다. 이 셋을 끌어안지 못해서 조선은 망했다. 조선의 세도 정치 및 후진 역사성은 이 셋의 번득이는 천재성을 끝끝내 포용하지 못하고 모두 교수형 아니면 참형으로 다스렸던 것이다.
p196 탐보라 화산이 터졌다. 1812년부터 조금씩 인도네시아 숨바와섬에서 이상 조짐을 보이던 탐보라 화산이 드디어 터졌다. 1815년의 일이었다. 인도네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폭발 소리가 감지될 만큼 엄청난 분화였다. 발리섬과 그 옆의 룸복섬 그리고 그 옆에 숨바와섬에 있는 탐보라 화산이었다. 숨바와섬에 있던 1만 2,000명이 폭발 7일 만에 사망하고, 8만 명이 1년 안에 모두 죽었따. 무려 9만 2,000명이 직접적인 피해로 죽었다.
p201 정한론. 1870년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전달되었던 일본의 대륙 침략 계획이다. 사쓰마 번의 사이고 다카모리에 의해 처음 주창되었떤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쓰마 번과 함께 1868년 메이지 유신은 각 현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것을 일본이라고 하는 하나의 나라로 합친 것이다.
p208 바우덕이는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받는다. 벼슬을 받은 것이다. 정3품 이상은 당상관이다. 바우덕이가 얼마나 뛰어난 예능 실력으로, 당시 경복궁 중건 노역자들에게 노동 의지를 불태우게 해주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p214 이하영은 철도 노선을 놓기 위해서는 대규모 출자가 이루어져야 함을 계속 이야기했고, 이에 금융왕 JP 모건이 눈치 빠르게 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느 ㄴ정동교회 바로 건너편에 한국 지점을 설치했다. 그리고 미국 자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차부터 개설했다.
p217 태화관에 오지 않은 민족 대표 4명이 더 있다는 것을 손병희의 진술로 확보했다. 인감도장만 맡기고 오지 않은 것이다. 평안북도의 길선주 장로, 평안북도의 유여대 장로, 김병조 목사, 정춘수 목사 등은 모두 각자의 곳에서 더욱 열심히 만세를 부르고 그 현장에는 가지 않는 대신 인감도장을 보내, 독립선언서에 도장은 총 33개가 찍혔다.
p219 요리 만드는 사람이 그 요리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11월 18일 아침 소식을 듣고 까무러쳤다. 그 중명전 회의장이 바로 대한제국을 망하게 만든 을사늑약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자신이 만든 요리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순간 양 손목을 자르고 싶었다는 안순환의 회고. 그러니 1919년 3월 1일의 민족적 거사에 안순환은 손병희를 붙들고 그날의 오욕을 씻게 해 달라고, 민족지도자 대표 33인에게 제가 정성껏 만든 요리를 대접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독후감 > 2024_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53] 화이트홀 (1) | 2024.11.21 |
---|---|
[2024-52] 다시 역사의 쓸모 (1) | 2024.11.20 |
[2024-50] 사유하는 미술관 (20) | 2024.11.07 |
[2024-49] 난처한 미술이야기8 (6) | 2024.11.05 |
[2024-48] 옥스포드 세계사 (3)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