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독살로 읽는 세계사
작가 : 엘리너 허먼
출판사 : 현대지성
읽은날 : 2021/07/11 - 2021/07/23
요즘은 컨셉이 잘 잡아야 팔린다. 제목을 보면 읽고 싶어지지 않나?(나만 그런가?)
일본 작가가 아니고, 제목이 끌려서 읽었다.
독살하면 내 머리속에는 소현세자나 정조가 떠오르는데 유럽에도 정말 독살이 많았나 보다.
왕이나 귀족, 정부가 죽으면 끊임없이 독살 음모론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독살인지 잘못 알려진 의학상식 때문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당시에는 비소가 사람 얼굴을 하얗게 하는 미백효과가 있다고 해서 많은 화장품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다보니 비소로 인한 중독사망이 꽤 많았다.
지금 과학으로 보면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니 그랬을 것이다.
내가 어릴때는 슬레트에 고기를 구어먹었다.
아마 후대 사람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화장품, 화학용품으로 보며 기겁을 할 것이다.
책의 말미에 가면 19세기 이후에는 독살이 줄어든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한가지.. 입헌 군주제등이 도입되어 왕을 죽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
그렇다면 독재자가 가장 암살과 독살을 무서워하겠지?
김일성이 비행기를 못탔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지만 그런 걱정 안하고 사는 내가 제일 좋다.
3% 이 분야에 깊이 빠져들면서 수백 년 전 유럽의 궁전은 온갖 종류의 독으로 넘쳐났다는 사실(물론 모든 독이 치사량에 이를 정도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을 알아냈다
6% 헨리 8세는 어렵게 얻은 아들 에드워드 6세를 보호하기 위해서 왕자가 우유, 빵, 고기, 달걀, 버터 등을 먹기 전에 감별사가 충분한 양을 먹어보도록 했다
11% 결석을 해독제처럼 사용한 군주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스페인의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 프랑스의 프랑수와 1세가 있다
14% 엘리자베스는 고도비만이었던 아버지 헨리 8세처럼 몸이 불어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식사 자리에서 몇 입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곤 했다
14% 많은 여성이 수은 파운데이션 위에 비소 파운더를 덧발라 창백한 피부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그런 얼굴이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비소중독으로 손바닥과 발바닥의 피부가 비늘처럼 벗겨져 따끔거렸으며 피부, 대장, 방광, 폐, 신장, 간 등에 암이 발생할 위험도 높았다.
18% 무지의 결과로 여기며 웃어넘길 수는 없다. 의사들의 잘못된 신념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21%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로운 병을 프랑스병이라고 불렀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나폴리병이라고 불렀으며, 러시아 사람들은 폴란드병, 터키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병이라고 불렀다
23% 제멜바이스가 의사의 손과 치료 도구에 대해 엄격한 위생 규정을 적용하자 사망률은 즉시 18퍼센트에서 3퍼센트로 감소했다. 그러나 다른 의사들은 그의 말을 비웃었다
25% 공주와 시녀들은 "궁 구석구석 벽을 향해 음경을 내놓고 있는 짐승 같은 영국 놈들을 보지 않고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라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26% 18세기 전까지 대부분의 왕실은 대략 2주마다 궁을 옮겨 다녔다. 튜더 왕실도 1년에 서른 번을 이동했다. 다양한 경치를 즐기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궁에서 소변과 배설물을 닦아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7% 치루가 유행한 지 1세기나 지난 뒤에도 베르사유의 의사들은 여전히 물이 인간의 정력과 성욕을 감퇴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한 달에 딱 한 번만 목욕했다.
29% 1348년에 창궐한 페스트는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400여 년 동안 유럽에서 페스트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31% 1979년에 중성자 활성화 및 원자 흡수 분석 방식으로 뉴턴의 사망 당시 잘라두었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납, 비소, 안티몬은 보통 사람의 4배, 수은은 15배나 검출되었다. 만약 1693년의 머리카락을 검사한다면 훨씬 더 많은 양이 검출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32% 종교 분쟁이 대체로 그러하듯 교황파와 황제파의 충돌은 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의 탐욕에서 비롯되었으며, 군대 지도자들은 이를 침략과 약탈의 핑계로 삼았다.
35% 칸그란데는 흉포한 전쟁광이 아니었다. 그는 급성장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수혜자로 세련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시와 예술, 문학을 사랑했으며 쓰러진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었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적어도 8명의 혼외자를 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42% 에드워드 6세는 역사의 조연으로 취급할 뿐이다. 만약 그가 살아남아 전성기를 맞이했다면 세계사가 어떻게 변했을지 우리는 그저 상상할 따름이다. 정의로운 성품과 책임감, 학문에 대한 열정을 생각하면 아마도 전에 없던 훌륭한 왕이 되었을 것이다
47% 젊은 여성이 무리 없이 섭정하며 뛰어난 업적까지 거두는 모습을 보면서 사사건건 그녀의 일을 방해하던 보야르들은 더욱 약이 올랐다. 그들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엘레나는 귀족들이 소유할 수 있는 땅의 한도를 법으로 정하고 세금을 올렸다
48% 이반의 치적 중 하나인 상바실리대성당은 양파 모양의 돔 9개가 조화를 이루며 붉은 광장에서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50% 요아나는 칭찬보다는 비난을 더 많이 했다. 경건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던 그녀는 이탈리아인의 활달하고 재치있는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51% 프란체스코는 메디치 가문의 명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페르디난도는 무척 신경을 썼다. 그는 형과 정부가 토스카나에서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추잡한 농담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화를 참지 못했다. 또한 그는 형에게 괄시받는 형수 요아나를 무척 아꼈다
52% 의사들 대부분은 프란체스코와 비앙카가 독이 아니라 오늘날 말라리아라고 부르는 삼일열로 숨졌다는 데 동의했다
53% 형의 아들인 안토니오에게는 친절한 삼촌이 되어주었다. 안토니오가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했고 땅을 하사해서 넉넉한 수입을 보장해주었다
54% 가브리엘은 앙리가 뛰어난 유머 감각과 좋은 품성, 넘치는 열정, 날카로운 지성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남자임을 깨닫고 그에게 푹 빠졌다
56% 그는 교황의 압력에 굴복해 마리 데메디치와 결혼한 후에도 수년 동안 그 석상을 찾아갔으며, 그가 이후에 배력 있고 어린 여자들을 정부로 삼았던 것은 반항 심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56% 명랑하고 외향적인 브라헤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꽁하지 않고 뒤끝이 없으며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57% 조상 덕에 얻은 신분으로 명예를 좇는 짓거리는 자기들이나 하라고 하게. 나는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한다네. 신께서 우리보다 높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보도록 허락하신 소수의 사람들이 있거든.
58% 케플러는 비록 좋은 대접을 받기는 했지만, 수년 동안 다른 사람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계산 작업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신의 성과를 책으로 펴내지 못하거나 명성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60% 덧칠하기 위해 물감이 마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캔버스 위에서 몰아치듯 붓을 놀렸다. 이처럼 그는 관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66% 프랜시스의 대역을 고용해서 두꺼운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검사를 받게 한 것이다. 위원회가 "그년 성행위를 하는 데 문제가 없으며 여전히 처녀다"라고 발표했을 때 궁에 있던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73% 미모에는 익숙해져도 멍청함에는 적응이 안 되는 법이다
77% 모차르트는 주로 기악곡을 작곡했다. 물론 성악곡도 작곡했지만 가수보다 음악 자체를 돋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에 청중뿐만 아니라 오페라 가수들의 기분까지 상하게 했다
81% 나폴레옹은 평생 동안 무척 건강하게 살았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술은 적당히 마셨으며 아침마다 따뜻한 물로 몸을 문질러 닦았다. 무엇보다 그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의사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82%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영국이 내 시신을 웨스트민스터사원에 안치할까 봐 걱정이다
83% 1821년 나폴레옹이 죽은 후로 큰 변화가 생겼다. 왕족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 의혹이 점점 줄어들다가 거의 사라진 것이다. 왕권이 약화되면서 왕을 죽일 이유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85% 1860년 "상쾌하고 무해한 화장품"이라고 광고했던 레어드사의 피부 미백제 '블룸 오브 유스'가 엄청나게 많은 아세트산납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마비, 체중감소, 메스꺼움, 두통, 무기력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85% 오늘날에도 19세기의 초록색 복식을 다루는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비소가루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한다
87% 2012년 메릴랜ㄷ 대학교 역사 임상병리학 콘퍼런스에 참석한 의사들은 러시아 공산당의 창시자 레닌이 정치적 후계자인 스탈린에게 독살을 당했다고 결론지었다
92% 우리는 그들이 사용했던 납 화장품과 수은 관장제와 비소 크림을 비웃지만, 미래 세대는 분명 오늘날의 화학요법에 경악하면서 우리가 왜 암이나 자폐증 혹은 치매를 유발하는 물질이 담긴 제품을 사용했는지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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