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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2_독후감

[2022-85]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by 반란을_꿈꾸며 2022. 10. 19.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 문학동네

 : 2022/10/01 - 2022/10/08

 

어릴때 가졌던 꿈이 천문학자나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며 산다는 건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질까?

어느덧 우리나라도 달탐사를 할 수 있는 기술과 자원을 가지게 됐다.

달 연구자인 심채경 박사의 천문학 에세이다.

줄을 한 번 잘못(?) 선 죄로 타이탄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고 한다. 

천문학 에세이답게 별연구와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별 관측을 위해서 정성스럽게 천문대에 계획서를 써야 한다든가, 별관측보다는 관측결과를 분석하는 일에 더 많이 매진한다든가, 점성술에서 쓰이는 12별자리 외에 뱀자리를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스시대부터 논란이 있었다는 등등.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해야할까?

부러움을 가지고 읽었다. 재미있었다. 

 

 

p12 논란의 주인공인 뱀주인자리는 한쪽 끝이 황동에 약간 걸쳐 있어서 황도상의 중요 별자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무려 그리스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나는 또 생각에 빠져든다. 황도상에서 각 별자리가 차지하는 넓이가 처녀자리 같은 것은 넓고 전갈자리는 좁은데, 그러면 생일 별자리를 나눌 때 실제 별자리의 크기에 비례해서 날짜 구간을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은 접어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아, 뱀주인자리요? 그거 원래부터 거기 있던 거예요. 근데 자기 별자리가 뱀주인자리로 바뀐다고 하면 기분이 좀 이상하지 않을까요?

p15 이공계 대학원에서 흔히 랩 미팅이라고 부르는 이 회의는 그야말로 대학원 생활의 꽃이다. 꽃 같다는 말이 중의적으로 쓰인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하지 않겠다. 회의 준비로 이틀 전부터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하루 전날은 밤새 컴퓨터 앞에 앉아 수식의 오타나 그래프와 씨름을 하다가, 살벌한 회의 끝에는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져 허덕이다보면 다시 다음 회의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 흔한 대학원 생활이다

p20 관측은 잠깐이지만 관측자료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데는 여러 날이 걸린다. 이틀치 관측자료를 몇 개월씩 붙잡고 있는 일도 다반사인데, 그 기간은 옰이 연구자 개인의 몫이다

p20 교수님이 구인 공고를 냈다. “목성 스펙트럼을 직어 왔는데 처리할 사람이 없어. 누가 해볼래?” 대학원생 선배들은 이미 각자 맡은 연구 주제가 있었다. 참석자 중 마땅히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유일한 학부생인 나뿐이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외쳤다. 태양에서 1AU 거리에 있는 지구에서부터 5AU 거리의 목성으로 순간이동하는 주문을. 그때의 나를 오늘날의 나로 만든 바로 그 주문을. 그건 아주 짧고 간단한 문장이었다. “저요”

p23 1997년이라니, 어느 대학 무슨 과는커녕 어느 고등학교에 갈지도 모르던 때였다. 발사됐는지 어쨌는지 알지도 못했던 카시니가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그 시점에 7년이라는 시간을 날아 -내 머릿속에서는 빛이 속도로- 타이탄 코앞에 도착해버린 건 정말 흥미진진한 일이다

p29 연구한 내용을 학회에서 발표하면 그 자리에서 곧장 신랄한 지적이 들어온다. 논문으로 써서 제출하면 심사자가 이것저것 고치라고 하거나, 이건 논문감이 아니라며 승인을 거절해버릴 수도 있다. 허접한 논문을 제출했는데 운이 좋게 너그러운 심사자를 만나 출판이 되어도 문제다. 내 잘못이 박제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p34 0보다 작은 수를 쉽게 뺄 수 없는 학생과 멈춰 있는 축구공도 제대로 못 차는 내가 무엇이 다른가, 같은 깨달음을 얻으며 한 주 한 주가 흘러갔다

p38 2019년, 인류는 최초로 블랙홀의 사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블랙홀 자체는 볼 수 없지만, 빨려들어가면서 휘어지는 빛, 그리고 빨려들어가는 물질 일부가 방출하는 에너지로 블랙홀의 윤곽을 관측한 것이다. 그런 기법을 고안하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마침내 블랙홀의 사진을 얻어낸 놀라운 천문학자들 덕분에 나는 다시 강의하게 된다면 첫 시간 퀴즈를 수정해야 한다

p40 지구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는 13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소빙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

p44 나는 학생들이 큰돈을 치르며 이십대 초반을 낭비하는 것에 반대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그 시간과 비용을 내 강의에 낭비해야 먹고살 수 있는 처지였다

p58 과제가 끝나면 계약직 연구원인 나의 고용 기간도 끝난다는 뜻이므로, 과제가 끝나기 전에 미리미리 다음 과제 혹은 다음 직장을 알아봐야 한다. 과제 제안서나 자기소개서, 연구 계획서를 쓰고, 그간의 연구 실적을 모아서 양식에 맞게 입력하고 증빙 자료를 만드는 일, 졸업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새로 발급받는 일은 아주 지겹지만 먹고사니즘과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좌우할 수 있는 신성한 작업이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p65 내가 코스모스를 읽을 때의 모습은, 동생이 끼워준 이어폰을 차마 내던지지 못한 언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좋은 작품이고 대단하다는 것을 알겠지만, 뭐 꼭 나까지 그렇게 같이 좋아야만 하는가 싶은 바로 그 표정 말이다

p69 인터뷰 요청을 받는 등대지기의 심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천문학자의 경우 사회의 부름에는 대체로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천문학을 비롯한 많은 과학 분야가 국민이 낸 소중한 세금에서 연구비를 받고 있으며, 과학계 종사자임을 밝히면 듣는 사람은 대개 “오~”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이 직업을 존중해준다. 물심양면 지지를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 물론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연구하는 것이 가장 큰 보답이겠고, 이렇게 기회가 주어질 때 대중과 소통하는 것 또한 부수적이면서도 중요한 임무다

p89 아는 교사가 환경 교육 자료를 공들여 만들면서 초록별 지구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고 했다가 이래서 이과생은 안 된다며 의절당할 뻔했다.

p93 학과 건물 옥상에 선배들이 지었던 간이 천문대에서는 관측자가 돔 천장 여는 것부터 망원경 조작, 관측까지 모든 일을 다 했지만, 제대로 된 천문대에서는 오퍼레이터가 많은 부분을 해결해준다

p95 망원경을 미국에 설치해놓았더니 시차 덕을 본다. 대낮에 내 연구실에 앉아 미국의 밤에 뜬 달을 관측하니까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하늘이 유난히 맑은 날이면, 노을도 차분해지고 공기가 선선한 날이면 나는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네”하고 중얼거린다. 그러고는 관측자의 일과를 상상한다

p100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직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아무튼 그때까지 지구상에서 그 그래프를 본 건 이 탁자에 앉아 있는 오직 두 사람뿐이라는 것도 분명했다. 교수님은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게 말했다. “심박사, 사고 쳤네?”

p105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 하고 싶어서 이 세계에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다. 하지만 평생 놀고먹어도 될 만큼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월급도 계약 기간도 과제에 달린 박사후연구원들에게는 학문의 세계가 그렇게 신성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p107 지구에서부터 준비해가야 하는 연료와 에너지원, 그리고 여행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절약할 수 있는 궤도, 176년에 한 번 씩만 가능하다는 그 최적의 경로를 따라 보이저는 질주했다.

p109 보이저의 모든 가학 탐사가 끝난 후에야 고향을 잠시 돌아보는 위험한 응시가 허락되었다. 너무 멀어지기 직전에 건진 사진 속 단 하나의 픽셀에,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 찍혔다

p116 거대한 태양의 아래쪽 끝이 지평선에 닿을 때부터 위쪽 끝마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열여섯 시간. 지구에서는 해 지는 시간이 불과 2분 남짓인 것을 생각해보면, 수성은 일몰을 사랑하는 게으름뱅이에게는 최고의 행성일지 모른다

p143 5000년도 넘는 세월 동안, 이 무덤의 주인은 매년 동짓날마다 자기 자리에서 일출을 맞이했다고 한다.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이 무덤을 건설한 사람들은 밤의 길이가 규칙적으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고, 계절에 따라 해가 뜨는 방향과 고도를 헤아릴 수 있었다. 이들이 어떤 종족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훌륭한 천문학자를 보유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p146 브라헤의 관측기록이 어찌나 정교했던지, 그 자료를 분석한 케플러는 행성의 공전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행성은 태양 근처에서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태양에서 멀 때에는 느리게 움직이며, 공전 궤도의 장반경이 공전 주기의 3분의 2제곱에 비례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세 가지는 케플러 법칙으로 불리며,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기본 규칙이 되었다

p153 매일 같은 시각에 달의 위치를 관찰하면 매일 동쪽으로 옮겨가는데, 한 달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달이 하루 묵어가는 자리라서 숙자를 쓴다

p155 오로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흑점은 눈으로도 보이기 때문에 시대를 불문하고 관측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데, 조선의 기록가지 합치면 오로라 기록 건수가 700회를 넘는다. (아마도)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만 가진 놀라운 자산이다

p188 2024년 다시 달로 향할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BTS를 들으며 우주를 항해할 예정이다. 우주에서 그들이 떠나온 지구를, 그 안에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 모두를 돌아볼 것이다.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가. 손에 무엇 하나 쥔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p192 연구는 내가 인규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