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병자호란
작가 : 임용한
출판사 : 레드리버
읽은날 : 2022/10/01 - 2022/10/08
국방TV에서 본 임용한 박사님의 전쟁사..
텔레비전과 유투브에서 전쟁사를 너무 재미있게 봤었다. 책도 참 재미있게 쓰신다.
청나라에게 항복하고 수많은 포로가 발생했던 병자호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고도 별로 변한 것이 없는 조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없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는다.
곡성의 유명한 대사처럼... "뭐가 중한데?"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고 지휘체계를 세우지 않아 우왕좌왕하며 각개격파당하는 군대의 모습을 읽다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무능한 지도자 밑에서 피를 보는건 백성들 뿐이다.
지금은 지도자를 국민들이 뽑는데 어쩌면 그렇게 무능한 사람을 지휘자로 뽑는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그 역사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p9 병자호란은 치욕의 역사이고 누가 보아도 짜증나는 이야기만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교훈이 풍부한 사례이기도 하다
p20 그는 “우리가 갈 수 있다면 적도 올 수 있다”라고 반박했지만 이 역시 통하지 않는다. 이때가 놀랍게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걸까?
p23 누군가가 이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갑자기 하면 분명 흑심이 있는 것이다. 조선은 이때부터라도 건주여진 전담부서를 만들어 첩보를 수집하고 세심한 연구를 했어야 했다
p34 누르하치는 자신이 직접 북경까지 가서 조공을 하면서 간교할 정도로 명 조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누르하치의 탁월한 정략이가리보다는 뇌물의 힘이었음이 분명하다
p39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경험 덕분인지 명군과 누르하치의 전력에 대해 비교적 정확히 예측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조선의 군사력이었다. 광해군은 말했다. “조선 군대가 형편없다는 사실은 온 천하가 다 안다. “
p46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만의 급제자 속에 24세의 임경업도 있었다. 사대부들이 걱정했던 대로 집안은 보잘것 없었다. 천얼 집안 출신이라는 말도 있었다.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무과급제도 쉽지 않은, 이번 같은 전시에조차 운 좋게 무과급제는 가능해도 관원으로 승진하기는 어려운 그런 집안 출신이었다. 난세에 탄생한 이 젊은 장수는 훗날 조선의 제1방어선 의주를 책임지게 된다
p48 적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한 번 움직이면 조선의 능력으로는 전투 능력과 수비면에서 모두 승산이 없다는 뜻이다. 광해군 시절에 비변사는 후일 인조 때보다 후금의 군사력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솔직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조정의 결론은 나라가 멸망하더라도 부모를 배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p54 명은 다른 건 몰라도, 수, 당, 거란, 몽골이 한반도를 침공했다가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이 하는 걸 보니 그것도 옛날이야기라 여기긴 했지만, 혹시 아는가? 조선이 각성하고 옛날 모습을 되찾을지? 명의 노림수는 바로 그것이었다
p78 중국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야 한둘이 아니지만 중국인들은 송의 악비와 원숭한의 죽음을 지금도 애통해 한다. 이들은 한족 왕조를 수호하기 위해 여진 왕조인 금과 청에 맞선 한족의 영웅이었다
p84 인조는 모시기 쉽지 않은 군주였다. 어리석은 군주보다 어리석고 고집 센 군주가 모시기 힘들다. 똑똑하면서 고집이 센 군주는 더 모시기 힘들다. 인조는 똑똑한 편이었다. 그런데 고집이 센 타입이라기보다는 보신주의 성향이 강한 군주였다. 판단은 정확한데 정치적으로 눈치를 많이 보면서 결정을 회피했다
p89 옳고 당신들이 그르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겠다. 교역을 안 하면 당신들만 손해다. 내가 손해 볼 것 없다. 척화파는 이런 논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정의라면 반드시 상대에게 강요해야 하고, 몸에 좋은 음식은 상대방이 싫어하더라도 강제로 먹여야 한다. 그게 성리학의 정의관이고 사대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판단하다 보니 척화파는 당시 홍타이지의 답변을 허세가 들통난 것으로 받아들였다
p94 병자호란에 관한 기록을 읽다 보면 화가 나는 경우보다 어이없는 경우가 더 많다. 제일 짜증나는 경우는 황당한 탁상공론이다. 뻔하디뻔한 전략,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대간이나 예조판서가 늘어놓는다. 인조도 답답했는지 “이런 일에 관심을 끄고, 맡은 직무에 충실하라”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p107 티레 주민들은 최대한 방어를 강화했지만,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쳐들어와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티레를 끝끝내 함락시켰다. 그 뒤로도 티레는 무수한 침공을 받았고 수없이 파괴됐지만 전쟁이 끝나면 바로 재건되곤 했다. 불사신 같은 티레 재건의 비결은 바로 재화였다. 티레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지중해 세계에 무역의 가치를 알린 페니키아인이었다. 티레에 아시리아와 알렉산드로스, 십자군을 불러들인 것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한 힘도 무역이 낳은 재화였다
p112 현실을 무시하는 규정과 관행에 묶여 살면서 모두가 언제든 탄핵을 당하거나 반대로 탄핵을 할 수도 있는 사회가 조선의 관료사회였다.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것은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생산역량의 문제이다
p127 궁과 관청의 종들 중에는 정묘호란을 겪은 이들이 많았다. 그들로부터 정묘년의 어처구니없는 비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들의 충고는 한결같았다. “난리가 나면 무조건 도망쳐야해. 난리통이라 나중에 돌아와도 처벌 못 한다니까?”
p146 조선 조정에는 이러한 자칭 행정의 달인들이 너무 많았다. 전쟁위원회라 할 수 있는 비변사마저도 행정의 마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p209 절반은 비겁한 변명이었다고 해도 중요한 점은 양반이라 배낭을 멜 수 없다는 말이 당당히 핑계가 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뛰어난 전사라는 선전관도 배낭 메고 수통 차는 것을 거부했다
p248 조선군을 얕잡아 보았는데, 의외로 실전을 겪으면 빨리 배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간, 미스터리한 나라였다. 황제의 당부가 떠올랐다. “조선군은 쉬운 상대지만 절대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황제의 경고는 조선의 이런 이상한 잠재력 때문인지도 몰랐다
p256 구원부대는 이렇게 사실상 전멸했다. 충청, 강원, 경상부대들은 부대 간의 협력도, 심지어는 제대로 된 정찰도 없이 제각각 적진의 코앞까지 진군했다가 각개격파당했다. 전술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이 패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p290 조선 왕이 여진족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 충격은 이해가 가지만 책임 있는 리더라면 항복 협상 중 산성에 있는 군인과 백성의 철수 문제를 논의했어야 했다. 명분 논쟁만 하다 이 문제가 속 빠졌다. 질서정연하게 산성으로 들어와 남문을 사수했던 수원병사들은 성을 나서자마자 절반이 청군의 포로가 되었다
p297 척화파는 김류와 최명길을 비겁자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김류는 군비강화를 방해한 인물이 되었다. 이건 완전한 왜곡이다. 두 사람은 협상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외교와 전장의 역학관계를 한 번도 무시하지 않았다. 팔도 근왕군의 궤멸에 책임이 큰 사람은 오히려 인조와 척화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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