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빛의 시대 중세
작가 : 매슈 게이브리얼
출판사 : 까치
읽은기간 : 2023/10/10 -2023/10/17
중세라는 시대는 참 이율배반적이다.
여행을 다녀보면 중세는 관광상품으로 최고다.
중세에 멈춰진 도시, 중세복장으로 서빙하는 식당, 중세기사들의 퍼포몬스 등 중세는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관광의 중심으로 사용된다.
반면 암흑시대라는 말로 대표되는 지식과 과학이 종교에 억압받던 시대라는 이미지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중세는 멈춰있던 시대도, 암흑시대도 아니고 빛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기독교라는 이름이 메인이긴 하지만 기독교도 여러종류의 기독교가 유럽 전역에 있었고, 당시 사람들도 다이나믹하게 활동하며 살았던 시대라고 이야기한다.
12세기 르네상스라는 말도 있듯이 중세를 하나의 색채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다채롭고 아름다왔다.
세계사의 큰 줄기에서 한 가지를 들춰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쏟아진다.
중세시대에 궁금증이 점점 더 늘어난다.
p16 빛의 시대는 대성당의 높은 천장을 수놓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과 아름다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피와 땀, 기독교의 금빛 유산, 신앙심 깊은 사람들의 자선과 헌신뿐 아니라, 신성함이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전쟁, 옹졸함과 두려움 탓에 불태워진 이단자들의 살갗도 포함한다.
p33 알라리쿠스 1세가 로마로 진군하면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정반대의 결과, 즉 승리할까 봐 두려워했을 것이다. 알라리쿠스 1세는 굳이 전쟁을 그 특정한 결말로 밀어붙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p43 455년에 로마는 반달족 무리에게 또 약탈을 당했다. 그 다음에는 동고트족이라는 새로운 무리가 이탈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이들은 490년대 초에는 테오도리쿠스 왕의 치세 아래 통치권을 굳건히 다졌다
p46 역사에 필연적인 것은 없다. 정치적 풍향이 아주 조금만 바뀌어도 우리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
p56 제국이 연속할 수 있었던 요소들 중의 하나는 타고난 신분을 극복하는 비범한 사람들이었다. 만약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연약함의 징후는 활력의 징후로 바뀔 것이다.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문명에서 퍼져나오는 빛의 징후로 바뀔 것이다. 암흑시대는 좀더 밝아진다.
p62 비화에는 테오도라의 젊은 시절에 관해 알려져 있는 구체적인 내용 대부분이 실려 있다. 프로코피우스는 비화에서 그녀를 매춘부로 불렀고, 그녀가 끊임없이 공공연한 성행위를 즐기고 평생 욕정에 타올랐다고 비난했다.
p71 아라비아 반도는 고대 교역망의 핵심 교차점으로 번성했다.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북쪽의 육로를 이용하면 페르시아를 거쳐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남쪽의 육로를 이용하면 안티오키아, 아크레, 또는 카이사레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를 우회하는 다른 육로를 이용하면 곧장 아라비아 반도를 꿰뚫고 지나가 북아프리카에 이를 수 있었다
p75 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은 거대한 영토를 자랑했으나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두 제국 모두 통치자들이 무리 없이 다스릴 수 있는 규모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거느리고 있었고, 내부의 투쟁과 상대 제국과의 싸움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p90 흔히 고대의 기독교를 획일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행히 오늘날 역사가들은 단 하나의 초기 기독교가 아니라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 전역에 존재했던 다양한 기독교들을 언급한다.
p97 그러나 테오델린다는 중요한 인물이다. 정통파는 아리우스파에 승리를 거두었고, 그레고리우스 같은 성직자들은 테오델린다 같은 여성들에 힘입어서 서유럽에서 지배적인 기독교 종파가 되었다.
p104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에게서 모든 외적인 즐거움을 빼앗지 않아야 그들이 내적인 즐거움을 더 쉽게 맛볼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선교사들에게 다신교 신전을 파괴하는 대신 성수로 정화하라고, 또 그곳 주민들의 원래의 종교의식을 고수하도록 장려하라고 당부했다.
p117 앞에서 언급한 더 공식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짙은 8세기의 사료들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영웅적인 행위를 보여주는 남자들, 예를 들면, 늪지대에서 칼이나 찬송가로 괴물들과 싸우는 남자들의 이야기들에서 여자들의 주체성과 권력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p130 귀족들의 동조(프랑크인들의 왕이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는 비결은 약탈품에 있었다. 즉, 프랑크인들이 승리를 거둔 후에 전리품으로 분배한 토지와 특권이 바로 그것이었다.
p137 카를루스 마그누스의 제국의 심장부에 있는 아헨의 궁전 예배당이 아마도 이 상호침투적인 이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790년대에 시공되었고 805년에 완공되어 헌정되었으며, 지금은 소실된 모자이크와 대리석판이 가득하고 돔으로 덮인 그 8각형 건물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와 테오도라가 찬연히 빛나는 모자이크 속에서 숭배자들을 내려다보는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과 비슷하다.
p147 바이킹은 온갖 일을 저질렀고 그 모든 곳에 있었던 듯싶다. 그들은 카를루스 왕조가 유럽 북부에 남긴 것들을 휩쓸었고, 지중해에 쳐들어갔고, 비잔티움 제국군에 소속되어(혹은 비잔티움 제국군에 맞서) 싸웟고,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이슬람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칼리파를 상대로 거래했다
p181 제르베르가 시력을 회복한 것과 대주교의 군대가 파멸을 맞이한 것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례에서 요점은 당대인들이 하느님이 여전히 세상사에 개입한다고 확신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많은 사람들은 하느님이 새로운 선민들을 저버지리 않았다는 점에 안심했다.
p189 이른바 제1차 십자군 원정의 발단에 대해서 여러 학자들의 설명은 단 하나의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1095년 11월 클레르몽 외곽의 들판에서 열린, 전사와 성직자들의 공의회 석상에서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연설을 한 순간이다
p217 빛의 시대동안 다윗의 보석과 같은 물건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이븐 시나의 철학과 같은 관념들이 줄기차게 동쪽과 서쪽의 수평선을 향해서 움직였다. 한 페르시아인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세상 사람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p236 그녀는 기주마르를 치료한다. 그를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남편에게서 벗어난다. 자신을 가둔 두 번째 남자의 구애를 거부한다. 연인을 알아보고, 마침내 그와 함께 일생을 보내기로 한다. 그런 그 모든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름조차 없다
p250 1170년대 무렵, 한때 외부적인 것으로만 보였던 위협이 기독교 세계를 엄습한 듯했던 그 순간에, 유럽의 역사가 방향을 틀기 시작하면서 알리에노르와 힐데가르트가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권위는 더 단단히 통제될 필요가 있었고, 그 권위를 나누어줄 수 있는 자들은 더 단단히 통제했다.
p255 주교들 연설에서 사용한 표현은 라틴 기독교인이 동쪽으로 진군하며 처음에는 라인란트 지방의 유대인들을 공격하고 나중에는 예루살렘의 거리를 “그리스도의 적들”의 피로 물들였던 이른바 제1차 십자군 원정에서도 사용되어 익숙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약 100년이 흐른 그때, 그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p273 중세의 기독교인이 볼 때, 유대인은 폭력-괴롭힘, 차별, 때로는 폭행과 살인-을 당하는 경험을 통해서 굴종적 지위를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교황이 요구하고 프랑스의 국왕이 지원하고 기독교 성직자들이 참여한 재판의 결과에는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p286 1250년에 이르러 프랑스는 파리 정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새로운 대성당과 눈부시게 화려하고 독자적인 예배당 덕분에 더는 파리 북쪽에 있는 생-드니와 그 수도사들의 보호를 받지 않게 되었다. 더는 성모 마리아와 파리 주교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p294 키즈칸은 초기부터 피정복 민족들-특히 저항 없이 항복한 민족들-이 자신의 군대와 제국에 투항하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데에 유의했다. 그는 해묵은 원한을 최소화하고 패배한 몽골적 집단들을 제국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몽골족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p312 최근 역병 연구에 일어난 혁명은 흑사병에 대한 새로운 하계 간 접근법에 힘입어 촉발되었다. 그 새로운 역병 연구에 따르면 흑사병은 제2차 페스트 범유행이다.(6세기부터 8세기까지 이어진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제1차 페스트 범유행이다)
p320 위기는 거의 언제나 전통적으로 소외된 공동체에 가장 극심한 영향을 미친다. 국가 차원이든 아니든 간에, 기존의 폭력 체계는 가장 취약한 부류에 들이닥친다.
p348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몇몇 출판물은 1917년에 앨런비가 예루살렘을 탈환한 사건을 두고, 미완으로 끝난 리처드 1세의 제3차 십자군 원정의 완성이라고 일컬었다. 현대의 식민주의적 야심과 정치적 포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중세적 과거로 시선을 돌린 방식에 대해서,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들에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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