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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4_독후감

[2024-47] 옛 그림으로 본 조선3

by 반란을_꿈꾸며 2024. 10. 24.

제목 : 옛 그림으로 본 조선 3

 : 최열

 : 혜화 1117

읽은기간 : 2024/10/08 -2024/10/17

 

이런 책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꽤 여러 권이 나왔는데도 몰랐다.

역시 서점에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면서 책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꾸준히 가져야 한다.

책은 매우 두껍지만 그림이 많아 읽기가 어렵지는 않다.

다만 그림과 책의 내용이 어떨 때는 앞에, 어떨 때는 뒷페이지에 있다보니 왔다갔다 하면서 읽는 것은 좀 힘들었다.

조선의 실경을 그린 그림이 이렇게 많다는 데 놀라고, 또 그 그림이 매우 정교하다는 데 또 놀랐다. 

정교하다고 해서 사진처럼 그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그 고을이 그려진다. 

중요한 건물이나 길, 강은 다 그려져 있고, 내가 볼 때는 그 고을이 또 정겹게 그려져 있다.

오래 보게 된다.. 

다른 책들도 조만간 빌려서 봐야겠다.. 좋았다. 

 

p31 조선시대 이루어진 유람 가운데 가장 희귀한 경우를 꼽자면 강원 원주 사람 김금원의 유람이다. 여자인 그는 남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동을 비롯해 갖출 것은 다 갖추었는데 모두 집안에서 마련한 것이다. 그의 유람 사실을 지금 알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가 호동서락기라는 유람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p58 송악산은 경기 5악의 으뜸가는 산이었다. 경기 5악은 송악산과 더불어 연천의 감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편의 화악산, 안양의 관악산이다

p61 땅은 그곳과 인연을 맺은 유명한 사람 때문에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지 다만 경치가 빼어나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p72 수도에 가까우나 섬이서 멀리 떨어진 강화는 권력에서 밀려난 학자의 은신처로 제격이었다. 하곡 정제두를 중심으로 하는 강화학파는 성리학 일변도의 학풍에서 양명학의 계보를 이어 기라성 같은 사상가를 배출했다.

p82 남쪽의 감악산은 신령한 산이다. 봉우리 정상에 높이 170센티미터의 감악산비라는 비석이 서 있어 신비를 더하고 있다.

p126 김시습이 수락산에 머물며 읊은 수락산에 남은 노을의 마지막 구절은 그리도 서글프다. “하늘 끝이 가없으니 뜻오 어찌 가 있을까. 붉은 빛 머금은 노을에 밝은 빛 흔들리네”

p137 용문사 은행나무는 후손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에 서 있는, 나이 600살 넘은 바로 그 은행나무다

p160 안산의 성호 땅과 단원 땅은 특별한다. 단원은 단원구 일대를 말하고 성호는 지금 경기도립미술관 앞 호수를 가리킨다. 이곳에서 두 사람이 태어났다. 성호 이익과 단원 김홍도다. 그들은 자신의 아호를 그 땅 이름에서 취했다.

p196 단양팔경은 그 아름다운 땅의 하나일 뿐 예부터 사람들은 충북 전역을 일러 맑은 바람 밝은 달이라는 뜻을 담아 청풍명월의 땅이라 하였다

p214 옛 그림 속에서 옛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빼놓을 수 없다. 실경화에는 거의 모두 유람객이 등장한다. 하지만 숨은 그림처럼 아주 작다. 그래서 자칫 놓치기 일쑤다.

p297 전쟁이란 더욱이 약소국가가 치르는 전쟁이란 왕족과 대신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가장 참혹하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물론 일제를 상대로 하는 의병들의 독립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을 돌이켜보면 그때마다 왕족과 대신, 대통령과 국회의원 같은 통치자들은 더욱 번창했고 백성과 민인은 더욱 비참했다.

p350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펼쳐진 김제만경 너른 들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벌판이다. 한눈에 천리를 본다는 일목천리의 땅이라고 부른다.

p355 이매창으로 말미암아 부안에 자주 내려온 교산 허균은 이곳에서 위대한 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는데, 그와 함께 이매창이 읊은 시편은 조선문학사를 비단처럼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p367 8킬로미터에 이르는 강천계곡 구비마다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1981년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강천사며 귀래정, 합미성, 홀어미산성 그리고 삼인대가 있어 이 땅이 아주 오랜 세월 사람의 역사가 쌓인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p399 온화하고 평화로운 나루터라는 뜻을 품은 강진은 북으로 달빛 월악산이 하늘을 향하고 남으로 쪽빛 탐진강이 바다로 들어간다. 기름진 땅이라 곡식 또한 기름진데 그 흙으로 빚은 청자가 아름답다

p407 처음에는 몇 명에 불과했지만 이후 16명에 이르는 국사를 배출할 정도의 대가람으로 거듭났다. 불가의 세 가지 보물인 부처, 경전, 승려, 다시 말해 삼보를 갖춘 절을 삼보 사찰이라고 하는데, 16국사를 배출한 송광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 최고의 경전인 대장경을 지닌 해인사와 더불어 이른바 승보 사찰로서, 삼보 사찰의 하나로 우뚝 섰다

p438 20세기까지 거의 모든 강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모래톱이 참 많았다 하지만 양쪽에 도로를 내고 뚝을 쌓는가 하면 심지어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이라며 수수만년을 흐르던 강물을 가로막는 보를 여기저기 설치해놓고보니 저 금모래 은모래는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다.

p474 화폭 맨 아래쪽 물길은 바위까지 쓸어내릴 듯 엄청난 기세다. 겸재 정선은 뒷날 개성의 박연폭포, 한양의 청풍계와 인왕산을 그렸는데 마치 그 예고편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이런 기법이 아직 숙성한 건 아니어서 거친 붓질과 흩어진 구도가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다.

p521 통영은 고난에 빠진 이 난민 화가를 따스하게 품어준 고장이다. 전쟁의 참화속에서 병든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낸 아픔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난민 이중섭이 이곳 통영에 왔다. 통영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에 근무하고 있던 공예가이자 절친한 벗 유강열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통영은 외로움에 방황하던 이중섭에게 숙식과 더불어 작품 제작에 필요한 물품을 안겨주었다. 그 사랑에 힘입은 이중섭은 도원은 물론 들소 연작을 비롯해 숱한 걸작을 탄생시킨 뒤 홀연히 진주로 떠나갔다.

p526 물금이란 이름은 신기하다. 아닌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금지하는 게 없다는 뜻을 지닌 물금의 유래는 신라와 가락국이 대립할 때에도 믈굼나루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으로부터다. 막힘 없는 낙동강변의 자유무역 지대인 물금역은 뜻을 알아서인지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여겨진다.

p561 그동안 내가 깨우친 건 이 나라 조선은 실경의 나라요, 실경의 천국이라는 점이다. 조선에 불었던 유람 열풍이 그것을 가능케했다. 이름난 산하를 찾아 훌쩍 떠나는 탐승 열풍이 일어난 건 18세기였다. 이에 호응해 유명한 명승지를 그린 그림을 방안에 걸어두고 누워 서 유람하는 와유가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화가들마다 앞을 다퉈 금강과 관동, 단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토대가 마련되자 빼어난 화가들이 혜성처럼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