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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4_독후감

[2024-57] 임진왜란-상

by 반란을_꿈꾸며 2024. 12. 11.

제목 : 임진왜란-상

 : 임용한

 : 레드리버

읽은기간 : 2024/11/30 -2024/12/06

 

믿고보는 작가님 가운데 한 분...

전쟁사 토크멘터리에서 봤는데 그 거대한 전쟁 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설명이 쉽다고 깊이가 없는게 아니다. 거대한 담론을 이렇게 정리해서 알기 쉽게 말하려면 얼마나 내공이 쌓여야 하는걸까?

이번에는 임진왜란이다..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조선의 수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조가 나름 똑똑하고 능력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변방의 이순신을 수군으로 보내 장수가 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선조는 꽤 뛰어난 왕이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의심병.. 어쩔수 없는 측면도 있다. 전쟁에 패한 왕과 싸우면 이기는 능력있는 장수가 있는데 백성들이 누구를 지지할까? 

더구나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는 인기있는 장군이니 당연히 견제를 했을것..

그런 악조건에서 승리를 이끌어낸 이순신이라는 장군이 더 대단해보인다.

하권도 있는 것 같은데 기대가 되는 책이다. 

 

p29 1591년에 조선이 일본의 침공 의도를 몰랐거나 전쟁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도요토미가 에둘러 말했지만, 그는 서신으로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p37 편제를 마치면 사열과 활쏘기 훈련을 진행한다. 급박한 때에 무슨 사열이냐 싶지만, 병사들을 전선에 내보내 적과 죽음과 마주하게 하려면 먼저 지휘관, 동료, 군에 대한 신뢰가 확보되어야 한다.

p46 이때(후에도 또 이런 적이 있다) 이순신의 행동을 신중함으로만 해석하는 건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이순신을 이순신으로 만든 미덕은 맹목적인 신중함이 아니라, 전쟁의 생리와 병사의 심리에 대한 깊고도 정확한 이해였다.

p84 이때 각 배에 어떤 방법으로 신호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목소리가 들릴만큼 가까이 붙어서 항해하면서 소리로 전달했을까? 현선을 전령처럼 사용했을까? 우리의 전사 기록은 이런 상세한 부분의 묘사가 너무 소홀해서 안타깝다.

p111 2층설과 3층설은 당대의 논쟁이 아니고 후대 학자들의 논쟁이다. 2층이든 3층이든 거북선은 성공적으로 운용되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진실은 무적의 거북선을 위해 거북선 승무원들은 마치 유보트 승무원들처럼 그 어떤 배보다 힘든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p138 조선군은 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당항포 전투는 조선 수군의 전술 능력이 교과서적으로 발휘된 전투였다. 거북선이 돌격해서 적을 동요시키고, 총탄을 맞으며 대응 사격을 한다. 그 뒤로 탄옥선이 들어가 팀별로 사냥감을 잡는다. 화포와 화살 공격으로 제압사격을 하며 적함에 접근한다. 화공으로 태우기도 하지만, 적병이 사격에 거의 쓰러지거나 배를 포기하고 도주하면 승선해서 나포한다. 승선해서 잔존병력을 죽이고, 포로를 구하고, 전리품을 거두고 불태운다.

p155 일본군의 위기는 승리의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던 5월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핵심은 이순신의 보급로 차단으로 인한 군량 문제였다. 그렇다면 결론도 간단해지는데, 호남을 정복해야 안정적인 식량 생산지와 군량 수송로를 확보할 수 있었다.

p195 안골포에서 매복하지 않은 것은 이런 신뢰를 위한 결단이다. 하지만 이런 전장의 리더십과 고뇌를 조정 관료들이 납득할 리 만무했다. 매복하지 않은 이유를 대면 비겁하다고 닦달을 해댈 것이다. 그래서 이순신의 장계는 상세한 설명을 생력하고 필요한 말만 남긴 것이다.

p231 자신들이 선발하고 녹봉을 주며 길러 낸 무장들이 얼마 안 되는 일본군도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초야에서 일어난 의병이 일본군을 곧 섬멸할 수 있다는 황당한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이 인식은 조선의 문관들이 전쟁에 대해 얼마나 문외한이며 그동안 국방, 군사정책을 얼마나 엉망으로 짜 왔는지, 그들이 시행해 온 관리 등용책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었는지 자인하는 격이었지만, 또 그런 반성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p249 이순신은 기가 막혔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제대로 된 도움은 안주고 훼방만 놓다가, 막상 전쟁이 터지자 아무것도 못 하던 인간들이 뭐가 좀 된다 싶으니 다시 입을 열어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선조의 자애로운 명령이 떨어지자 갑자기 병력의 반 이상이 사라졌다.

p251 유가의 정치사상은 훌륭한 내용도 많지만 유독 군비와 전쟁에서는 판타지를 만든다. 그 판타지의 정수가 도덕과 정의감으로 무장한 백성의 궐기다.

p286 그럼에도 선조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만의 하나의 가능성도 용납할 수 없었다. 리더의 자질로 보면 심각한 결격사유고, 한심하고 졸장부 같은 행동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평소에 선조는 똑똑하고 판단력 빠르고 상대를 배려할 줄도 아는 꽤 훌륭한 리더십을 보이는 군주였지만,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자신의 모든 장점을 잃고 돌변했다.

p361 362 뛰어난 관료이자 온화한 인품과 덕으로 유명했던 이원익은 인조, 광해군대에 영의정까지 역임한다. 조선시대에 명재상 리스트를 만든다면 반드시 들어갈 사람이 이원익이다

p377 난중잡록에는 가토가 섬에 갇혀 있다고 요시라가 이순신에게 직접 통지했는데, 이순신이 듣지 않아서 가토를 놓쳤다고 했다. 난중잡록은 요시라와 고니시도 혼동하고 있는데, 전쟁 중에 도는 가짜뉴스가 이렇게 무섭다.

p401 원균은 사퇴하지 않았고, 선조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책임회피 근성이 발동한 선조는 승정원에 쪽지를 보내 원균의 보고서를 반드시 역사에 상세하게 기록해 두라는 명령만 내렸다. 책임감을 잃은 2명의 리더가 조선의 장병과 백성을 사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p424 18일 칠천량해전 소식이 전해지자 권율은 선조에게 이순신 복직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고, 선조의 답변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이순신에게 달려왔다. 난감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이순신은 명장다운 간결한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가서 직접 보고 대책을 구상하겠습니다”

p426 선조의 이순신에 대한 과도한 견제와 이기적인 고집은 조선 수군의 전멸만이 아니라 그동안 적의 침략을 면했던 경상우도 지역과 순천, 남원 등 전라남부 지역에 끔찍한 피해를 초래했다.

p442 더 신속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안위나 김응함은 훌륭한 전사였다. 아무튼 이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제일 먼저 대장곁으로 달려온 장수들이다. 그래도 이순신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장수를 꾸짖기보다는 병사들을 분발시키려는 어법이었을 것이다.

p479 장군의 후예들은 특별한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모든 전쟁에서 승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기상과 명예, 충절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