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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5_독후감

[2025-04]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by 반란을_꿈꾸며 2025. 2. 19.

제목 :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 창비

읽은기간 : 2025/02/08 -2025/02/14

 

우리나라 3대 구라(?) 유홍준 교수님의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썼던 여러 글들을 모아 잡서로 출판했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고인에 대한 글이다. 

일단 유홍준교수님의 인연이 닿는 분이 무척 많다는 게 신기했다. 

현대사의 한복판을 살아온 것 같은 분이다. 

지금 보면 참 유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유신독재때 감옥살이도 하고, 민중미술이나 운동권 사람들과의 친분을 보면 신념있게 강인하게 살아오신 것 같다. 

고인들을 추모하며 쓴 글을 보니 고인들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그 시점을 보게 되지만 죽게되면 그 인생을 보게된다라는 말이 정말 맞다. 

살아계실 때 더 대접하고 알아봐줬으면 좋았을텐데 그러기엔 내가 너무 세상에 관심없이 살아가는 것 같다. 

이런 잡서를 읽는 것이 참 좋다.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p5 한 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으로 그분은 문과생들은 ‘한 사람의 지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준비하라고 훈도하셨다.

p6 옛 문인들의 문집을 읽을 때도 나는 시, 논, 소, 차, 서, 서, 척독 등 정통적인 글쓰기보다도 대개 마지막에 실려 있는 잡저를 눈여겨보았다. 잡정는 세상만사가 다 들어있고 거기엔 인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p15 200여 년 전, 나하고 종씨인 유씨부인이 27년간 써오던 바늘이 부러지자 이를 애도하는 조침문을 썼듯이 나도 고별연이라도 남겨야했다.

p46 나는 이 중년의 신사야말로 정직한 관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백남준도 일찍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뼈 있는 일갈을 하지 않았던가.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들은 이른바 설치미술이 대종을 이루고 있는 바람에 종래의 예술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장면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p55 선생은 스스로 책방 주인이라고 낮추었지만 누구 못지않은 애서가였다. 통문관에는 적서승금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책을 쌓아두는 것이 금보다 낫다는 뜻이다. 그리고 선생은 훌륭한 서지학자, 국학자였다.

p63 내가 죽으면 네 친구들이 죄다 문상 오는 게 장관일텐데 그걸 볼 수 없는 게 서운하구나

p72 동양화의 핵심적 주제는 산후화입니다. 산수화는 5세기 종병이라는 분이 늙어서 산에 갈 수 없게 되자 방에다 산수화를 그려놓고 누워서 감상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를 와유라고 합니다. 처음 산수화가 등장할 때는 대자연의 수려한 아름다움을 담았는데 점차 인간이 서정을 발하는 산수인물화로 바뀝니다. 선비가 바위에 턱을 기대고 냇물을 바라보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p85 달덩이 같은 항아리를 만들고 싶었던 조선 도공의 에술의지는 마침내 커다란 왕사발 두 개를 아래위로 이어붙여 달항아리를 만들어냈다. 때문에 달항아리는 기하학적인 동그라미가 아니라 둥그스름한 볼륨감을 지니고 있다. 그로 인해 완벽한 기교가 주는 꽉 짜인 차가운 맛이 아니라 부정형이 주는 여백의 미가 있다.

p89 우리나라 정자는 생김새보다 자리 앉음새가 중요하다. 특히 강변에 세운 정자에 명작이 많다.

p89 남한의 3대 정자로는 진주 남강변의 촉석루, 밀양 낙동강변의 영남루, 제천 청풍 남한강변의 한벽루를 꼽고 있다. 북한에선 평양 대동강의 부벽루와 연광정, 안주 청천강의 백상루, 의주 압록강의 통군정 등이 예부터 이름 높다.

p114 간찰은 옛사람의 생각과 처지를 생생히 전하고 있어 무척 유익하고 재미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편지로 논쟁한 것은 너무도 유명한데, 성호 이익이 안정복에게 보낸 간찰 같은 것은 학문과 사상의 피력이며, 추사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첫머리에서 “어제는 오늘과 비슷한데 왜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느껴지나요. 다름 아니오라…” 하는 구절은 그 자체가 시다

p133 옛날에 백두산으로 오르는 길은 갑산과 삼수를 거쳐 혜산에서 올라가는 길이 정코스였다. 그 삼수와 갑산은 백두산 자락의 첩첩산골이어서 삼수갑산으로 귀양살이 떠나는 유배객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곳이다.

p143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가 열렸을 때 제3세계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 피해를 입었지만 국가마다 사회체제를 달리하여 입장 차이가 있었다. 이때 저우언라이 총리는 구동존이를 제시하였다. ‘같은 것은 함께 추구하고 다른 것은 다름으로 남겨두자’는 것이었다.

p154 이 사실은 점점 중국에 퍼져 아름다운 우정이야기로 인구에 회자되었고 우리 사신들이 연경에 가면 중국 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하며 옷소매를 적셨다고 한다. 고국에 돌아온 홍대용은 연경에서의 일을 쓴 을병연행록과 엄성, 반정균 등과 필담한 것을 모은 회우록을 저술하였다.

p162 내가 일본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문화는 바로 이것이었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모든 제품에서 디테일이 아주 강하다는 미덕을 낳았다. 빈틈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은 일본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p167 1970년대초 내가 대학생일 때 백남준은 이미 독일에서 이름을 날리며 ‘21세기의 예술가’,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라는 수식이 따라붙었다. 나는 백남준의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다만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p176 이런 식으로 그림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경찰의 대공적 상상력이 어처구니없음을 넘 경이롭기만 했다. 미술비평엔 인상비평, 양식비평, 재단비평 등 등이 있는데 가히 공안비평이라 할 장르가 나타난 것이다.

p186 신학철 예술에는 서정과 서사라는 두 세계가 있다. 서정의 세계는 농촌화에 잘 나타나 있는 반면에 서사의 세계는 한국 근대사 시리즈에서 드러나는데 상상력의 고양이 뛰어나다.

p198 오윤의 민중미술에는 민중의 고통이 그냥 고통으로 표현된 적이 없다. 그것을 날 선 투쟁으로 형상화한 적도 없다. 울음도 없고 슬픔도 없이 때로는 익살로 때로는 신명으로 민중적 삶이 한껏 고양되어 있다.

p238 그게 그거일 수 있으나, 나라라는 말에는 파쇼 냄새가 나지만 사회라는 말에는 인간의 윤리가 살아 있다는 차이 아니겠어

p245 동네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다시는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로 장산곶매가 칠흑 같은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딱 하고 쪼기만 하면 샛별이 하나 생기고, 딱 하고 쪼기만 하면 또 샛별이 하나 생겨 갈 길을 잃은 사람들의 길라잡이가 되었다. 지금도 장산곶매는 캄캄한 밤하늘을 가르며 딱딱하고 부리질을 하면서 영원히 날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p255 옛사람이 말하기를 명문이란 “가득 담았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축약했지만 빠진 것이 없는 글”이라 했는데 선생님의 글이야말로 그러했다.

p270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현재의 모습으로 이야기되지만, 죽음은 그의 삶 전체를 드러낸다.

p276 톨레랑스는 타인과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관용이라고 번역되고 있지만 홍세화는 이보다는 용인에 가깝다고 했다. 프랑스 사전은 이 단어를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고 풀이한다. 한자로 풀자면 화이부동에 가깝다. 즉 (남을)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남으로 하여금 당신을) 존중하게 하시오라는 뜻이다. 홍세화의 화이다

p278 그는 어려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그렇게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살아갔다. 그의 마지막 직함은 소박한 자유인의 대표였고, 벌금형을 받고 돈을 낼 수 없어 징역을 사는 이들에게 무이자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장이었다.

p289 이래야 할 것 같아서. 더 많은 작품을 하셨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아침이슬을 대단하게 말하는데 오윤 형 그림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 미쳐. 형이 에전에 누군가의 이론을 들면서 리얼리즘에 있어서는 전형성의 제시가 생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 윤이 형은 바로 그걸 해내잖아.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