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왕비로 산다는 것
작가 : 신병주
출판사 : 매일경제신문사
읽은날 : 2022/04/16 - 2022/04/25
조선의 왕비에 대한 내용인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조선왕조의 모든 왕비에 대해 서술이 될 줄은 몰랐다.
왕이 아니라 왕비의 삶을 여러 역사서를 통해서 알게 되니 신선했다.
신분상승의 기회일 수도 있지만 실제 조선의 왕비들은 그리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세자빈으로 들어와 일찌 사망하는 경우도 있고, 쫓겨나는 경우, 대군의 부인이었는데 정변이 벌어져 왕비가 되기도 하고, 사약을 받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죽은 이후 무덤이 수난을 겪기도 한다.
남성 중심의 조선사회에서 무엇 하나 마음대로 하기 힘들었던 시대를 살아간 왕비들...
남들은 부러워했을 지 모르나 행복한 삶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성차별의 사회이긴 하지만 지금이 더 나아보인다.
책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 좋은 책이다.
2% 세조의 집권으로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면서 폐비가 된 정순왕후는 현재의 창신동 인근에서 옷감에 물들이는 작업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폐위된 지 230여 년 만인 숙종 때에 복권되기는 했지만, 20대 이후의 전 생애를 폐비가 된 일반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정순왕후의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7% 정안왕후는 1373년경 19세의 나이로 2세 연하의 정종과 혼인하여 40년 가까이 해로했지만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했다. 정종이 9명의 후궁 사이에서 17남 8녀를 둔 상황을 고려할 때 왕비는 인고의 세월을 담담하게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8% 원경왕후는 남편을 왕으로 만든 최고의 정치적 동지였으나 정작 남편이 왕이 된 후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친정 가문까지 철저하게 탄압받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13% 순빈은 이를 배운 지 며칠 만에 책을 뜰에 던져버렸고, 궁궐 안에서 술을 즐겨 마시며 자유분방하게 생활했다. “성품이 술을 즐겨 항상 방 속에 술을 준비해 두고는, 큰 그릇으로 연거푸 술을 마시어 몸시 취하기를 좋아하였다. 혹 어떤 대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자신을 업고 뜰가운데로 다니게 하고, 혹 어떤 때는 술이 모자라면 사사로이 집에서 가져와서 마시기도 하였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술을 좋아하고 술주정이 매우 심했던 그녀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15% 현덕왕후는 세조와 큰 악연을 가져 사후에 무덤이 훼손되고 종묘에서 신주가 없어지는 등 큰 수난을 겪었다. 중종 시대에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면서 무덤도 남편 곁으로 오게 되었다
16% 세조의 왕비에 대한 사후 보복도 이어졌다. 연려실기술에는 “하룻밤에 세조가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가 매우 분노하여, 네가 죄 없는 애 자식을 죽였으니 나도 네 자식을 죽이겠다. 너는 알아두어라 하였다. 세조가 놀라 일어나니, 갑자기 동궁(세조의 장자, 의경세자)이 죽었다는 기별이 들려왔다. 그 때문에 소릉을 파헤치는 변고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동안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되었던 현덕왕후는 중종 시대에 들어와 마침내 왕비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
18% 정순왕후는 18세 때인 1457년 단종과 사별한 후 숱한 시련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64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중종 때인 1521년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세종 때 출생한 그녀는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등 무려 8명의 왕과 함께 한 세상을 보낸 셈이다. 그녀의 무덤은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의 아들 정미수 집안 중종의 산이 있는 현재의 남양주시 진건읍에 대군부인의 묘로 조성되었다.
22% 성종실록에는 공혜왕후가 후궁에 대한 투기 없이 그녀들에게 최대한 은혜를 베풀어준 정황이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혜왕후 승하 후에 바로 성종의 계비가 된 폐비 윤씨가 후궁에 대한 투기가 대단했던 상황과 묘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25% 김시습의 초상화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그대로 나타난다. 일반 유학자들은 흔히 쓰지 않는 모자하며, 목에 염주를 찬 모습은 단번에 그가 기인의 풍모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28%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문자를 잘 알고 있던 신여성 인수대비에게, 왕인 남편의 행동을 투기하고 손찌검까지 하는 며느리는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극심한 갈등은 결국 조선 왕조 최초의 왕비의 폐출과 사사라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30%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란,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하였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32% 중종은 경복궁에서도 늘 옛 왕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단경왕후는 중종이 알아볼 수 있도록 집 근처 인왕산 자락에 붉은 치마를 걸쳐놓았고,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인왕산 치마바위 이야기다. 그만큼 두 사람의 애정이 폐위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36%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중심으로 하는 외척들은 자신의 세력을 견제하는 사림파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였다. 그들은 1545년 명종의 즉위를 계기로 사림파를 대거 숙청시키는 을사사화를 일으킴으로써 4대 사화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41% 16세기의 학자 조식은 당대에 이황과 더불어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지칭된 인물로서, 특히 성리학의 실천을 중시한 학자였다. 수양의 상징으로 항상 깨어 있다는 듯을 가진 성성자라는 방울을 옷에 달고 실천을 위한 행위로 자신의 사상을 글자로 새겨넣은 칼을 차고 다닌 것은 이러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51% 인조가 왕이 된 후에도 적극적인 내조를 하고, 광해군 세력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푸는 등 궁궐 내 야당의 역할을 했던 인열왕후는 1635년 12월 9일 산실청으로 쓰이던 창경궁 여휘당에서 승하앴다
53% 경희궁 창건은 처음부터 관료들의 동의를 얻어 공역 계획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술사, 지관, 괴승 등의 도참적 요언을 빌려 광해군이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시도된 것이었다. 광해군 즉위 초부터 일방적으로 권력을 전횡하려는 신권에 대한 견제와 왕위의 정통성 확보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으로서 정치적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었다고 볼 수 있다
59% 왕비가 된 후에도 인선왕후는 처신에 신중을 기했다. 항상 “부인이 스스로 잘난 체하면 가정이나 나라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으니 암탁히 새벽에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경계를 신중히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 하였다”고 할 정도로 조용한 내조를 실천했다
60% 세자빈으로 간택된 후, 남편이 왕이 되고 왕비가 되고, 아들이 왕이 되어 왕대비의 지위에 오른 왕비, 즉 조선에서 세자빈, 왕비, 대비의 세 과정을 모두 거친 경우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놀랍게도 현종의 왕비 명성왕후 김씨 1명뿐이다. 이는 조선의 왕위 게승에 그만큼 변수가 많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67% 서인 측의 핵심 인물이었던 김만중은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자 정계에서 물러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 일부다처제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처첩간의 갈등을 그린 가정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소설 속에는 서인과 남인의 권력 쟁탈이라는 정치적 변수가 숨겨져 있었다
72% 한중록에도 “원래 영조와 정성왕후 사이가 그리 좋지 못하여, 병환이 위중하신 후에야 오신것이라”고 하여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를 증언하고 있다. 정성왕후의 회갑에 신하들이 하례하려 하자, 이를 허락하지 않는 영조의 모습도 영조실록 1752년 11월 23일의 기록에 실려있다
73% 정순왕후의 친족들은 영조 시대의 노론 벽파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면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는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했다. 이러한 정순왕후의 정치노선은 시파의 입장에 서 있었던 정조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었다
81%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책을 좋아하는 스승을 위해 책을 보냈다. 이에 감동한 김정희는 의리를 지키는 제자를 위해 그림을 그려 화답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세한도로 1844년 김정희가 59세 때 그린 역작이다.
91% 명성황후가 장호원에 피난을 가 있던 힘든 시기에 그녀의 한양 입성을 거의 정확히 맞힌 무당 진령군은 이를 계기로 왕비의 최측근이 되었다. 진령군은 명성황후가 과도하게 굿에 의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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