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약탈박물관
작가 : 댄힉스
출판사 : 책과함께
읽은날 : 2022/07/11 - 2022/07/18
유럽이 아프리카, 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뺏은 유적물에 대해 쓴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도 프랑스를 비롯해 많은 나라의 침략을 받으면서 문화재를 강탈당한 역사가 있어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게 넓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베닌이라는 나이지리아 쪽에 있던 아프리카 부족을 영국군이 파괴하면서 약탈한 문화재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직 한 사건만 기록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학자로서 자신의 나라의 치부를 이렇게 자세하고 집요하게 조사하고 책을 냈다는데 놀라웠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다라든가, 영국에 가지고 왔기 때문에 잘 보존할 수 있었다는 등의 주장이 얼마나 허망한 이야기인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인류보편의 발전이라는 허황된 박물관의 목표에 대한 위선도 까발려진다.
내가 잘 모르는 역사적 사실이라 따라가기가 좀 어렵긴 했지만 어떻게 아프리카의 문화와 문명이 파괴되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도 외국 박물관 수장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우리나라 문화재를 생각해 보면 아프리카의 아픔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런 학자가 있다는 데 놀라웠고, 존경스럽다.
p19 이 책은 1897년 2월 베닌시티에서 벌어진 영국 군대의 폭력적인 약탈에 관한 책이다.
p45 아프리카 약탈은 제국주의가 진행되며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라 수탈적,군국적 식민주의와 간접적 통치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된 핵심적인 기술이었다.
p51 사물의 생애와 상대적 얽힘이라는 두 개념은 기존의 인류학 이론과 연결되며 1990년대부터 서구 박물관들의 주된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p56 푸코의 글 중 박물관을 주제로 한 것은 거의 없다. 푸코는 아마 박물관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부흥한 박물관학은 직서, 통제, 계보학, 규율, 권력 등 푸코식 용어를 적극 사용했다.
p65 드라큘라 이야기처럼, 2897년 베난에 대한 서사에서 엿보이는 고딕의 현대화는 제국주의의 도덕성에 대한 빅토리아인들의 우려, 서구 문명의 불안정성과 유럽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한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적극 이용한 것이었다.
p68 콜웰은 1868년 영국군의 막달라 공격이나 1874년 아샨티 왕국 공격, 1892년 프랑스군의 다호메이 공격 등 상대가 준 모욕을 되갚고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적을 처벌하기 위해 벌인 공격에는 사실 대개의 경우 숨은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외국 땅에 질서를 세우기 위해 실행된 일종의 정략적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p71 영국 해군은 야만을 종식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원주민 마을에 무차별적인 포격을 가했다. 영국은 문명을 보편 가치로 내세우며 아프리카의 왕궁과 성소를 파괴했다.
p103 이들 부대는 영국 해군의 지원하에 응징이라는 명목으로 여러 마을을 주기적으로 공격하며 지속적이고 폭력적인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p111 나이저회사는 여전히 이러한 행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흙을 파먹고 죽을 지경이 될 때까지 괴롭히겠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살아온 이 땅에서 굶어죽느니 그들과 싸우다 죽는 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p133 방법은 똑같았다. 상대에게 대화를 청한 후 만남을 거절당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이를 앞세워 보복 공격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p144 서아프리카 해안 지역에 대한 지배가 어느 정도 안정되며 영국은 더 큰 상업적 이익을 좇아 점차 내륙으로 진출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노에제 근절은 좋은 구실이 되어주었다.
p147 일로린은 항복했으나 회사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시에 포격을 퍼붓고 약탈했다.
p171 역설적으로 1897년 베닌 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기록의 부재다. 공식적인 문서는 물론 비공식적인 기록에서도 공격 이후 발생한 포로, 부상당한 원주민을 위해 운영된 병원, 환경 파괴로 인한 기근 등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p177 역사인류학적으로 볼 때, 앞서 언급한 베닌시티의 흙 건축물과 베닌시티 서쪽에 위치한 베냉공화국 사비의 흙 건축물은 기존에 생각했던 방어 등의 기능 외에도 공공건물로서 복합적인 정치적, 우주론적 중요성을 지녔을 것으로 예측된다. 수세기에 걸친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으로 건설됐을 이 건축물은 종교적 공간과 자연적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했다.
p182 영국은 베닌의 주권을 빼앗고 그것을 자신이 바라는 형태의 통치로 대체하기 역사와 왕권이 살아 있던 한 도시를 통채로 파괴했다.
p207 베닌 왕의 모든 산호와 청동 조각, 상아가 영국군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단절되어버린 역사 그 자체다. 그 단절의 크기를 이해하고 그것에 시각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애사의 층위를 더하기보다는 그 단절된 역사를, 생명 약탈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p218 약탈에는 성직자와 정부관리, 심지어 박물관 큐레이터들도 동참했다. 우리는 이들이 무엇을 약탈했는지, 그들이 가져간 약탈물들이 어떻게 됐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아무런 기록도 없이 손에서 손으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p220 서양 국가들은 집단 학살을 통해 상대의 물건을 빼앗아 와서는 야만에 대한 문명의 승리를 보여주겠다며 본국 곳곳에서, 그리고 박물관에서 전시하며 백인우월주의 이념을 확장했다
p235 약탈품으로서 영국에 도착한 베닌의 물건들은 패배한 적의 원시적인 부족 예술로 전시됐다.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가져왔다는 변명이 무색하게 이 약탈품들은 박물관 내에서 전혀 안전하지 않았다.
p242 박물관은 전시하는 물건에 공간의 차이가 아닌 시간의 차이를 덧씌웠고, 그렇게 전시된 물건들은 인종주의를 시각화하는 대용물이 됐다.
p250 인류학 박물관들은 새로운 물질주의적 증거와 전시를 통해 이러한 편견을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증오로 재탄생시켰다.
p254 베닌은 타락하고 퇴보한 문명으로 묘사됐다. 영국은 베닌의 예술품을 퇴락한 예술로 전시했고, 열등한 베닌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했으며, 종교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장소들을 파괴했다. 이러한 행위는 곧 다가올 20세기의 폭력의 예고편이었다.
p268 영국박물관은 세계 문화재에 대한 보편적 비전을 담은 근대적 박물관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세계 농장 귀족이 모은 장식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영국박물관이 인류보편의 이상을 바탕으로 설립됐다는 주장은 의도적인 조작이자 신화인 것이다.
p271 대량살상무기 제거는 폭력의 명분이 되어 이라크에서 벌어진 강탈과 점유를 정당화했다. 인권침해를 근절하고 서구식 민주주의를 세운다는 명분은 과거 영국이 내세웠던 노에제와 식인풍습, 인신공양 근절 등 인도주의적 명분을 연상시킨다.
p274 신화학을 연구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2005년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절대로 인류보편의 박물관이 아니다. 그곳에는 프랑스와 서구사회의 전통을 형성한 것들만 모여 있기 때문이다”
p295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대영제국의 역사는 편리하게도 해적으로 시작해 노예무역 철폐로 끝난다. 박물관들 역시 많은 경우 1838년 노예제 철폐에서부터 2차 보어전쟁에 이르는 기간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영국박물관의 수장고에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p311 약탈물의 서양 박물관으로의 이동은 이중의 과정이다. 이 행위는 약탈물을 원래의 주인에게서 빼앗았고, 동시에 우리를 풍요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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