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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2022_독후감

[2022-73] 그랜드투어

by 반란을_꿈꾸며 2022. 8. 26.

 : 그랜드투어

 : 설혜심

 : 휴머니스트

 : 2022/08/11 - 2022/08/24

 

그랜드투어의 역사에 대한 책.

그랜드투어를 어디로 다니고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에 대한 책인 줄 알았는데 그랜드투어의 역사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영국의 귀족들이 대륙의 역사를 배우고 즐기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기간은 길었다. 대부분 2-3년정도를 다니는 것 같다.

유럽을 다니면서 사교도 즐기고 역사도 배우고, 연애도 하고...

젊은 시절에 일탈과 교양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시간으로 보인다.

역시 귀족들은 살기 참 좋았던 것 같다.

영국의 뒤를 이어 미국도 역시 그랜트투어를 다닌것 같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니 더더욱 열심이었을 것 같다.

우리도 성인이 되기전에 이런 gap year가 있으면 참 좋겠다.

약간의 일탈과 교양을 쌓아 평생의 추억과 즐거움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만 돈에 얽매여 사는 모습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 

 

 

p10 그랜드 투어는 유럽 지배계급 사이에 동질성을 만들어냈고 예술과 건축의 발달을 촉진했으며 계몽사상을 전파하는 등 유럽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상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역사학계는 이 주제에 냉담했다

p22 이른 죽음으로 더 유명해진 시드니는 유고가 출간된 이후에는 문필가로서의 명성까지 얻었다. 당대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가운데는 그랜드 투어 안내서인 <유익한 가르침>도 있었다

p23 헤로도토스는 뚜렷한 목적이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행 자체가 즐거움인 여행일 했기 때문에 최초의 여행자로 불린다

p31 14세기부터 호기심은 도덕적인 오명을 벗기 시작했고 15세기가 되면 인간정신의 우월한 특성으로 여겨지기에 이른다. 나아가 여행의 합법적인 동기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탐험의 시대나 발견의 시대에 딱 맞는 개념으로 떠오르게 된다

p45 그랜드 투어에 나서는 이들은 “게으른 자, 호기심 많은 자, 허영심이 많은 자, 돈을 헤프게 쓰는 자, 순진한 자, 바보 같은 자, 감상적인 자, 그리고 지식과 보다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자”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p48 유럽대륙의 그랜드투어리스트 가운데 가장 극적인 인물은 아마도 러시아의 표트르 1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말썽꾸러기였던 표트르는 정신을 차리고 서유럽의 발달된 문물을 직접 보기 위해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p60 츠빙거의 책은 출판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나라에서도 곧바로 번역본이 나오면서 유럽 여행 지침서의 유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그랜드 투어 지침서들은 이 정형화된 틀을 유지하며 출판 시장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p70 그런데 돈쓰는 기계로 불리게 될 많은 여행자에게 팁이나 레슨비 심지어 관세 등은 그렇게 큰 지출이 아니었다. 엄청난 여행비의 주범은 사치와 방탕이었다

p74 여행 중에 죽은 사람도 상당수였다. 특히 나폴리와 포르투갈에서 폐결핵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

p86 에디슨의 여행기는 작가가 가장 자신 있었던 분야인 고전을 도구라 삼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이는 여행과 문학을 결합한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그는 호라티우스, 베르길리웃, 세네카 등 고대 시인들의 작품을 장소나 주제에 끼워 넣었다. 피렌체에서 볼로냐로 가는 험한 길에서 실리우스 이탈리쿠스가 묘사한 한니발의 행군을 떠올린다거나, 제노바에 생선이 귀하다는 사실을 호라티우스를 인용해 설명하는 식이었다

p96 몬터규가 보기에 여행기 작가들은 자기도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돈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서 항상 현재의 입맛에 맞추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기 때문에 여행기에 과장이나 오류가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p101 여행자는 자기 집에서 누리던 안락함을 누릴 수 있고 화려한 사교계가 있는 문명화된 지역을 선호했다

p104 데생의 여관은 훌륭한 음식을 내놓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생선과 게요리, 차가운 샴페인은 영국인들이 감격할 정도의 맛을 자랑했다고 한다

p113 마음속은 분명 고통에 차 있었겠지만 왕비는 슬픔을 감추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 그녀의 밝은 눈 속에서 단 한 점의 어두운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여신처럼 미소 지으며 기도서를 넘기면서 처음에는 왕을, 그다음에는 왕자를, 그리고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기도서로 시선을 돌렸다

p118 영국에서는 윌리엄 길핀 목사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면서,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픽처레스크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p139 독일 땅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독일은 숙박 시설이나 도로 사정이 유럽 최악이라고 할 만했다. 여행 지침서는 하나같이 독일의 여행 여건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p151 르네상스 시대는 흔히 무대의 시대라고 불린다. 마치 무대에서 연극을 하듯이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언행이 매우 중요했던 시대라는 말이다

p167 아부는 칭찬과 아첨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놓여 있는 것이지만 칭찬은 악을 제거할 수 있는 미덕이라고 생각되었던 반면, 아첨은 진심 없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악덕으로 간주되었다. 그 때문에 아부는 매우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p173 독일의 한 여행 지침서는 “여행을 할 대 산과 바다를 보지 말고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하라. 공부하는 학생들은 도시를 여행할 때마다 학자들에게 질문하고 그들을 찾아가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장조했다

p178 그랜드 투어의 성공 여부는 귀국 길에 들른 파리에서의 처신으로 판단되곤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리에서 살롱 등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그전에 만났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지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

p187 이 클럽의 회원이 되지 못했던 호러스 월풀은 딜레탕티 회를 “총각들이 술이나 먹는 클럽”이라고 비하하면서 “회원이 될 수 있는 기준은 이탈리아에 다녀올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술에 절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딜레탕티 회는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방탕아들이 근황을 주고받던 모임에서 벗어나 점차 미술품과 유적에 대한 취향을 발전시키면서 영국 예술사에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p195 메디치 가문처럼 신흥 상인 출신으로 지배자로서의 정통성이 취약했던 가문들은 미적 동기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위해 에술을 후원하고 열성적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다

p215 정작 이탈리아에서 화가로서 그의 명성은 그리 높지 못했다. 당시 지배적인 화풍과 다른데다가 돈맛에 길들여져 여행자의 입맛에 맞춘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카날레토의 그림을 영국인들이 몽땅 사가는 바람에 이탈리아에서 거의 볼 수 없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p254 게이야르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교육하지 않을 경우 학생이 얼마나 나쁜 지배계급이 될 수 있는지를 역설하다가도 “하지만 결국 그는 엄청나게 잘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귀족이며 고귀한 가문 출신이니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좋은 혈통을 지니고 있는지 자랑하겠지.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위대해 보일 것이다라고 한숨을 쉰다.

p279 영국인들에게 그랜드 투어는 다른 나라를 직접 봄으로써 영국인으로서의 특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애국심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p289 파리의 사교계는 영국의 유명 인사들을 언제나 환대했지만 그런 자리에서 그들이 빛나는 존재였다는 이야기는 별로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에서 이름을 날렸던 에드먼드 버크, 에드워드 기번, 심지어 데이비드 흄까지도 말이다

p299 제임스 하웰은 영국인이 지나치게 자기 나라만 위대하게 여기고 다른 나라를 깔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조심하라고 경고했고, 장 게이야르는 여행자라면 국적을 밝히지 말고 세계인으로 행세하며 자신이 머무는 관습에 적응하라고 조언했다

p315 클라크는 자신의 경험을 <1810~1823년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여러 나라 여행>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책의 내용을 북쪽 변경, 동쪽 변경, 남쪽 변경으로 구분함으로써 이 여행이 유럽 대륙의 변방을 답사하는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p329 몬터규가 보기에 외국을 평범한 수준에서라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매우 긴 체류와 부지런한 탐구, 그리고 훌륭한 고찰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그랜드 투어리스트들은 마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통과의례를 거치듯 외국을 거쳐가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p330 영국에서 마카로니는 원래 여행자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음식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다가 그랜드 투어와 연관되어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악덕에 물들고 겉멋만 든 젊은이를 지칭하게 되었다. 마카로니의 특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계집애 같은 취향이었다

p335 이것은 특히 유럽 대륙에 비해 성적 자유나 섹스의 기술이 뒤처져 있다고 생각되던 영국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대륙에서 여자와 관계하는 것을 일종의 제국주의적 정복으로, 국가의 수준을 높이는 행위라고까지 여겼다. 그래서 황태자비와 잤다든가, 심지어 집주인의 마누라를 정복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p341 여행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일종의 통과의례로서, 엘리트의 온전한 정체성을 갖추는 데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p349 로마에 카페 그레코가 있다면 1638년부터 커피가 판매되기 시작한 베네치아에는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이 있었다. 유럽 곳곳에서 베네치아를 찾아온 지식인들은 그곳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한쪽 구석에서는 1760년에 창간된 이탈리아 최초의 신문 가제타 베네타의 편집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p369 이 소설이 드러내듯이 그랜드 투어의 최후 배턴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인의 그랜드 투어는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19세기 중엽에 최고조에 달했다

p380 바이런의 죽음은 더 극적이었다. 1824년 오스만튀르크의 압제에 저항하는 그리스독립전쟁이 일어나자 바이런은 한 개 사단의 지휘를 맡아 원정에 나서게 된다. 그는 그 원정에서 불과 36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게 되었다.

p384 자신은 독립적이고 지식과 교양, 호기심과 생기발랄함을 갖춘 여행자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미덕이 결여된 열등한 관광객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여행은 전통적으로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는데, 쿡이 나타나면서부터 자격도 없는 하층민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특권의식에서 나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