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국인의 기원
작가 : 박정재
출판사 : 바다출판사
읽은기간 : 2024/12/23 -2024/12/31
기후변화에 따라 인종이 이동을 시작했으며, 그 이동으로 인해 인류가 구분되었다는 내용이 담긴 책이다.
한국인의 기원이지만 사실 전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전반부는 기후변화에 따라 아프리카에 있던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유럽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후반부는 아시아쪽의 이동경로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핫한 트렌드라서 그런지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한국인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더 관심이 갔다.
아직은 가설을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인류세라고 불리우는 우리 시대는 더더욱 기후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지구별은 사람이 살기 힘든 행성이 될지 다시금 복원력을 발휘할 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따라 한국인의 미래까지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p12 기후 자료와 고유전체 및 고고학 자료를 함께 살펴보면 과거 동북아 지역민들의 이동을 부추긴 요인들 가운데 핵심은 기후 변화였음이 잘 드러난다. 왜라는 빈칸에 기후변화가 들어갈 때 동북 아시사의 대대적인 인구 변동이 비로소 이해되는 것이다.
p16 한반도인은 홀로세 초기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과 홀로세 후기 산동, 라오동,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이 섞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p44 수십만 년 전 한반도에서는 베이징 원인으로 알려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의 주인공들이다. 호모 에렉투스가 한반도에서 사라진 후에는 데니소바인들이 잠깐 들락거렸을 가능성이 있다.
p82 지금까지 설명한 매듭무늬토기문화, 비커 문화, 아파나시에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는 모두 암나야 유목민의 후손이 이룬 성과라 할 수 있다. 폰틱-카스피해 초원에서 출발한 유목민이 넓게 퍼져나가면서 각지의 농경민과 교잡하고 유목과 농경을 혼합하여 지역문화를 창출했다.
p86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선조들의 이동은 활발했다. 이는 인류가 꽤 이른 시기에 말을 가축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인에 대한 자료 없이 현대인의 자료만으로 인류의 이동 역사와 경로를 정확하게 복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p96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집단으로 아무르강 집단이 있다. 아무르강 집단은 티안유안 계통에서 분기하여 아무르강 유역, 몽골, 시베리아 등 아시아 북부의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던 수렵채집민 사회다.
p108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의 차이(이형집합도)를 분석하면 집단 내 유전적 다양성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인 집단 내에는 대략 0.08%의 유전적 차이가 존재한다. 사람의 전체 염기 수가 30억개 이므로 한국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평균적으로 240만여 개의 서로 다른 염기를 갖는다.
p126 우리 인류는 과거의 간빙기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는 간빙기를 겪는 중이다. 여기에 인류가 초래한 지구 온난화까지 더해져 홀로세는 전례 없이 새로운 형태의 간빙기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는 이 인위적 간빙기를 인류세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p140 영거드라이아이스 말기의 빠르고 짧았던 온난화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세에 접어든 후에야 농경이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수렵채집민에게는 농경은 한 해의 대부분을 투자하면서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그야말로 위험한 모험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p151 태양활동과 기후 변화의 관계는 이미 여러 고기후 자료에서 확인된 바 있다. 태양 활동이 홀로세의 기후 변화를 결정했던 핵심 요인이라 믿는 학자들은 태양 활동의 변화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다양한 피드백을 통해 충분히 증폭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p158 정리해 보면 홀로세 초기(그린란드기)에는 북대서양의 열염순환이, 홀로세 후기(매갈리야기)에는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변화가 기후 변동의 주된 원인이었다.
p168 최적기 시기 지중해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유럽 문명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몇몇 유물만이 남아 흐릿하게 과거를 비춰줄 뿐이다. 이시기의 유럼 분화를 대표하는 유물을 고르라면 거석 무덤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p175 최근에 고DNA 분석결과가 연이어 발표되면서 중국 내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랴오허 문명과 홍산 무화를 해석하기 어려워졌다. 신석기 시대 홍산 문화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p194 하지만 유라시아의 유목민은 이러한 생태적 취약성 문제를 자신들만의 힘으로 극복하였다.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해질 때면 이들은 여지없이 주변의 정주 국가를 침범하여 약탈하였다. 금속과 특히 말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능력은 유목민이 정주민과의 싸움에서 항상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p230 한반도에서 수렵채집민의 존재를 나타내는 세석기, 슴베찌르개, 돌날 등의 유물은 2만 9000년 전부터 증가한다. 그리고 2만 1000년 전 사이에 정점에 달한다.
p244 전라남도 비금도와 광양의 꽃가루 분석 결과는 8200년 전에 한반도의 식생 구성이 크게 달라지느 ㄴ모습을 잘 보여준다. 참나무를 위시한 나무의 비율이 급감한 반면, 이끼나 양치류 등의 포작식물의 비율은 크게 높아졌다. 이런 생태계 변화는 당시 한반도의 기후가 갑자기 춥고 건조해졌음을 시사하는데, 한반도 또한 8200년 전 북반구 전역을 덮쳤던 한랭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p252 악마문 동굴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또한 한국인이 주로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계열과 동일했다. 이는 8200년 전 추위가 심해지자 동북아시아에서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와 한반도를 채웠던, 즉 한민족의 바탕이 되었던 그 사람들의 후손이 악마문 동굴에서 살았음을 보여준다.
p264 로베이츠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수렵채집민의 수가 늘어나는 5500년 전 이후의 한반도 고DNA 자료가 필요하다. 더불아 조몬인의 영향을 받은 해안가가 아니라 해안에서 먼 내륙 안쪽의 자료가 확보되어야 홀로세 중기의 인구 변동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p290 북방에서 밀려 내려온 사람들에 의해 수도작 문화가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송국리형 문화가 정확히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금강 중하류에 나타났는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p298 히타이트족은 무엇보다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민족으로 유명한다. 같은 시기의 이웃 국가들인 미케네,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이 청동기 문화에 머물러 있을 때 히타이트는 도구 제작에 철을 이용했다.
p307 강력한 가뭄이 도래한 2800년 전과 2300년 전뿐 아니라 그 사이 기간에도 기후는 점차 한랭 건조해지는 경향을 띠었으므로 동북아시아의 지역 사회가 연이은 기후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반도를 주도하던 송국리 문화인은 두 차례의 가뭄을 겪으면서 인구가 많이 감소했다.
p311 한반도 남부에서는 대략 2600년 전부터 점토대토기가, 2300년 전에는 세형동검이 나타난다. 모두 기후 변화와 사회 갈등에 지쳐 북쪽의 랴오시와 야로둥 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전한 것이다.
p314 로베이츠와 달리 코넬대학교의 언어학자 존 휘트먼은 원시 한국어가 2300년 전 랴오허 지역에서 세형동검을 지니고 한반도로 들어온 유목 문화 배경의 집단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원시 일본어는 그 이전에 벼 농경과 함께 랴오둥에서 한반도 그리고 일본 순으로 순차적으로 전달되었다고 보았다.
p319 제트 기류의 남하로 편서풍이 강해짐에 따라 서유라시아에서 강수량이 증가하여 초원의 생산성이 높아졌는데, 그 결과 많은 야생 동물이 서유라시아의 초원 지대로 모여들었고 수렵을 병행한 스키타이족 또한 사냥감을 좇아 중앙아시아를 떠나 서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p332 많은 이가 궁금해하지만 신라와 흉노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확한 사실 관계르 ㄹ파악하기는 어렵다. 설령 어던 특수한 관계가 밝혀지더라도 그러한 발견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선진 문화는 북쪽에서 들어왔고 북방의 기마 문화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p350 온조 집단과 김수로 집단 모두 북방의 선진 문물을 앞세워 토착 세력을 누르고 어르면서 지역의 지배권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당시에 한반도 남부에서 거주하던 토착민들은 이전에 내려와 정착한 고조선 유민의 후손들로 보인다.
p353 철기 저온기 때 스키타이족이 서쪽으로 넓게 확산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목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기동성 덕분에 이들은 이주가 필요할 때 심사숙고하지 않았다.
p360 그리스 도시들의 파괴는 유럽에 긴 암흑기를 불러올 만큼 파장이 컸지만, 이는 게르만의 대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지칠 줄 모르던 알라리크는 이번에는 동로마가 아닌 서로마 제국을 향해 움직였다.
p395 한반도인은 양쯔강, 랴오허강, 황허강, 아무르강 등의 4개 유역에서 기원한 사람들이 이동하고 섞인 결과 형성되었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특히 랴오허강 유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 기여를 많이 했다는 점도 여러 번 강조했다.
p410 랴오둥의 농경민은 북쪽에서 내려온 외부인과의 갈등과 기후위기에 따른 사회 내부의 혼란을 피해 한반도 남부로 이동하여 최초의 수도작 문화인 송국리형 문화를 발전시켰다. 다른 한랭화 시기와 달리 3200년 전에는 기후가 나빠졌음에도 한반도 남부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움직임을 전혀 볼 수 없다. 외부 세력이 대거 진입한 후 수도작 농경을 기반으로 빠르게 규모를 키웠기 때문이다.
p414 약 8200년 전 추위를 피해 아무르강 유역에서 내려온 수렵채집민 집단, 중기 청동기 저온기와 약 3200년 전 산둥, 랴오둥, 랴오시 등에서 이주한 농경민 집단, 철기 저온기에 랴오시와 랴오둥에서 남하한 점토대토기 문화 집단, 중세 저온기에 북방에서 내려온 고조선과 부여의 유민이 혼합하여 현대 한국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p428 한반도에서 마운더 극소기에 경신대기근(1670-1671년)과 을병대기근(1695-1699년)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아사하거나 난민으로 전락하면서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다. 이 두 대기근은 마운더 극소기 내에서도 흑점 수가 특히 적었던 시기(1670-1700년)에 일어났는데 당시 태양 활동에 한반도 사회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p441 기온이 높아져 지구가 아간병기로 들어설 때마다 지구의 자기 조절 매커니즘(여기서는 열염순환)이 작동하면서 다시 정상 상태인 아빙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영거드라이아스기가 끝난 1만 1700년 전 밀란코비치주기에 의한 기온 상승은 열염순환으로는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의 큰 변화였다. 결국 지구는 현 간병기인 홀로세로 진입하였고, 빙기의 저온 상태로 회귀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p449 과거 이주의 흐름은 인구증가라는 인문 지리적 요인과 기후변화라는 자연 지리적 요인이 겹칠 때 더욱 강하게 나타나곤 했다.
p478 기후 변화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이동을 야기한 주요인이었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생물이 과거 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어떻게 이동했는지 알아야 지금이 생물 분포를 설멸할 수 있듯, 인간이 과거에 왜 그리고 어떠한 경로로 움직였는지를 알아야 현 인간 집단의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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