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삶이 축제가 된다면
작가 : 김상근
번역 :
출판사 : 시공사
읽은날 : 2020/12/07 - 2020/12/13
과장된 제스처로 강의잘하시는 김상근 선생님의 새책..
산지는 좀 됐지만 이제야 읽었다.
첫번째 책 로마도 재미있었고, 이번 베네치아도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베네치아에 갔던 날은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이었다.
미로같은 베네치아에 비까지 내려서 골목길이 중간중간 잠겨서 다닐 수가 없었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임시로 놓은 다리를 건너다녔다.
물이 찬 골목길은 지나갈 수 없어서 다시 돌아나오기를 수십번...
사진으로 보던 짱짱한 베네치아는 오후에나 잠깐 볼 수 있었다.
나에겐 흐린 잿빛으로 기억되는 동네인데 이 책에서는 온갖 향락과 축제의 도시로 그려진다.
원래 그런 도시니까...
모든 일탈이 관대하게 허용되는 곳.
그곳에서 미술이 발달하고 상업이 발달하고, 화려한 바로크와 고딕과 르네상스가 어우러지는 건축이 발달했다.
내가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곳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온난화로 바닷물이 넘쳐서 잠기는 것보다 관광객이 많이 가서 가라앉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베네치아...
빨리 다시 가봐야겠다..
나도 뜨거운 밤(?)을 좀 경험해봐야겠다.. ^^
P13 물보다 중요한 것은 물 잔의 틀입니다. 틀의 모양입니다. 물은 물 잔의 틀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생각 자체보다, 여러분의 생각의 틀이 무엇인지 항상 살펴보기 바랍니다.
P14 스스로에게 노동의 강도를 더 높이라고, 남들보다 앞서가려면 절대로 쉬지 말라고 다그치는 사람은 남이 아니라,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P16 베네치아는 향락의 도시다. 광란의 카니발이 도시 정책으로 장려되는 곳이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출품작들은 시대의 광기와 극단을 축복한다. 전위적이지 않은 것은 반동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발칙한 도발과 해체적인 일탈은 베네치아인들에게 일상이다
P30 지금은 이탈리아에 포함되어 있지만, 기원후 697년에서 나폴레옹에게 나라를 빼앗긴 1797년까지 정확하게 1,100년간 베네치아 공화국은 독립된 도시국가의 형태를 유지했었다
P35 베네치아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제4차 십자군 전쟁은 엄청난 패착이었다. 지중해의 동쪽끝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이슬람 세력의 최후 방어막이었던 비잔틴 제국이 쇠락해지자 그 정치적 부담을 베네치아가 고스란히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P40 그랜드 투어는 부잣집 도련님들이 누리는 여행의 호사가 아니라 인격의 도야와 네트워크의 확산, 그리고 인문 고전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기 위한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P50 이성의 땅 독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호텔 문을 나섰지만 다시 타치오를 보고 싶은 열망 때문에 리알토 다리 아래에서 눈물까지 흘렸ㅓㄴ 아센바흐는 이제 개선장군처럼 리도의 엑셀시어 호텔로 귀환했다
P53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에로스를 만나야 한다. 그곳에서 에로스를 만나고 사랑을 하지 못한다면, 베네치아는 그저 죽음의 도시일 뿐이다
P62 끔찍한 권태를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자서전을 쓰고 있고, 즉 시간을 죽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지만, 자신의 삶에는 본받을 것이 전혀 없다고 처음부터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있다
P77 서구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새로운 인류로, 엄존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성적인 것을 포함한 개인의 행복 추구를 주체적으로 결정함에 있어 종교나 사회 규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신인류였던 것이다
P89 프리메이슨의 일원임을 과시하며 비밀결사의 조직원처럼 행동했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왕족들을 찾아가 납으로 금을 만들 수 있다고 사기를 쳤으며, 사기 도박판을 벌여 판돈을 수시로 긁어모았다. 그는 유럽 전체를 기망했다
P99 1574년, 프랑스의 왕 앙리3세가 베네치아를 공식 방문했을 때 600여 명의 니콜로티와 카스텔라니가 서로 주먹질을 하며 싸우는 것을 보고 "이건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지만, 축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P107 중국에서 우연히 고려에서 파견된 사신을 만났던 마르코 폴로는 압록강을 건너왔다는 말을 잘못 알아듣고 고려라는 나라가 섬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P112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했을 때 이 원작을 압수해갔고, 아직까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진품을 소장하고 있다. 나폴레옹이라는 날강도에게 명작을 강탈당하고, 원래 그 작품이 전시되어 있던 곳에 가짜 그림을 붙여놓아야 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울분이 느껴진다
P126 두칼레 궁전은 로마의 아치, 롬바르디아의 고딕, 아라베스크의 문양이 모두 결합된 세계의 중심이 되는 건축이 된 것이다
P144 산 마르코 대성당은 이탈리아의 수많은 성당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프레스코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순전히 모자이크로 내부를 장식한 곳이다
P155 1807년 9월 29일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큰소리치며 개선하는 도시마다 점령지 국민들의 마음을 후벼 팠던 나폴레옹은 베네치아에서도 굴욕적인 조치를 취했다. 우선 베네치아가 자랑하던 국보급 유물과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프랑스로 반출하기 시작했다
P157 점령군인 프랑스인들이나 뒤이어 베네치아를 통치했던 오스트리아인들은 산 마리고 광장 건너편의 다른 커피숖에 모였고, 자연스럽게 카페 플로리안은 베네치아인들의 아지트로 변해갔다
P164 산소비노가 로마에서 활동했던 1506년부터 1512년까지 르네상스 역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이를 미술사에서는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한다. 브라만테가 성 베드로 대성당 공사를 시작했고(1506년),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렸으며(1506년~1512년), 라파엘로가 서명의 방 벽화를 그렸던 시가(1511년)다
P169 건축가 한 명이 도시의 중심부 전체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사례는 아마 산소비노가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의 손길이 닿았던 산 마르코 국립도서관, 베네치아 조폐국 건물,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로제타가 모두 르네상스의 대표 건물로 인정받게 된다
P180 아예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팔라디오 양식'으로 건축된 이 모범적인 신고전주의 성당은 다른 이탈리아 성당과 달리 내부 조명이 밝은 편이다
P186 산소비노의 르네상스가 16세기 로마를 이상적 모델로 삼앗다면 팔라디오는 고대 로마,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비트로비우스 시대의 로마로 돌아가고자 했다
P190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중국의 시안이 연결되었던 길을 실크로드라 부른다
P195 동방 비잔틴 문화와 북유럽의 고딕 문화를 수용했던 두칼레 궁전에서 출발한 비잔틴-고딕 양식은 산소비노의 로마 르네상스 양식과 팔리디오-스카모치의 북이탈리아 신고전주의 시대를 거쳐, 롱게나의 바로크 시대에 도달한 것이다
P218 그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지나치게 개방적이다 보니 꼭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상실했다고 보았다
P242 앞서 가던 사람들은 미로와 같던 골목길을 통해 당신을 작은 광장으로 인도할 것이다. 앞서 가는 사람을 따라서 걷는 것! 이것이 베네치아에서 길을 찾는 비결이다
P248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요즈음은 유대인 주인공 샤일록의 촌철살인의 명대사를 통해 인권의 소중함과 인종차별의 부당성을 알린 불후의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P253 유대인은 개로 불렸고, 샤일록은 딸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던 수전노로 표현되었다. 즉 세익스피어의 이 문장은 당시 영국인들이 유대인을 개돼지로 취급했으며, 돈만 밝히는 수전노로 보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P264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제4차 십자군 함대는 아드리아해의 파도를 가르며 남쪽으로 힘찬 항해를 시작했다. 도제 단돌로는 노구를 이끌고 직접 함대를 지휘했다. 뱃머리에 서서 십자군 함대를 지휘하던 도제 단돌로의 모습은 베네치아 역사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
P270 시중에 나와 있는 마르코폴로나 동방견문록 역구서들을 읽어보면 마치 자신의 연구가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겨우 장님 코기리 만지기 이거나, 아니면 근거 없는 자신감에 휘둘린 신중하지 못한 연구자의 착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P275 폴로 일행은 황제엑 교황의 친서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유를 선물로 바쳤다. 쿠빌라이 칸은 4개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던 21살의 청년 마르코 폴로에 깊은 인상을 받고 원나라의 관리로 등용했다
P278 동방견문록의 백미는 베네치아 특유의 위트 넘치는 재담이다. 그들은 고난의 행국 속에서도 농담을 주고받으며 불타는 사막을 건넜고 죽일 듯이 달려오는 거친 파도를 헤쳐 갔다
P300 명장 피사니 제독은 키오자 전투를 승리고 이끌고 제노바 본토까지 압박하는 큰 전과를 올린다. 가히 베네치아이 이순신 장군이라 할 만한 이 위대한 인물의 영묘는 실제 인물 크기의 청동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P322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소문에 의하면, 1883년 2월 13일, 바그너는 오페라 여주인공과의 의심스러운 관계를 추궁하던 아내와 말다툼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P347 오른쪽에 있는 무라노를 방문한 프랑스의 왕 앙리 3세는 1574년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만약 내가 프랑스 사람이 아니었다면 베네치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프랑스의 왕 앙리 3세의 모습을 담고 있다
P363 요절한 천재화가, 조르조네가 그린 템페스트는 미술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베네치아 아카데미아가 자랑하는 일급 소장품이다
P375 뒤러는 베네치아에 2번 체류하면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신을 배웠고, 그것을 독일과 북유럽으로 전파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P381 13세기부터 카톨릭교회는 유럽의 각 도시 중심부에 두오모를 건축하고, 대표적인 수도회인 프란체스코 수도회, 도미니코 수도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혹은 베네딕트 수도회)으 주 성당 건물을 삼각형 패턴으로 배치했다
P382 피렌체에 미켈란젤로가 있고, 로마에 라파엘로가 있었다면, 베네치아에는 티치아노가 있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을 르네상스 시대의 3대 예술가라고 표현한다
P391 16세기 이탈리아 화단의 가장 치열했던 논쟁은 피렌체-로마 주도의 구도우선주의와 베네치아 주도의 색체우선주의간의 경쟁이었다. 앞에서도 잠시 살펴본 파라곤 논쟁이다. 피렌체-로마의 구도우선주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의해 대표되었고, 베네치아의 색채우선주의는 티치아노의 작품에 의해 대표되고 있었다
P401 아름다움의 근본 이데아를 완벽을 향한 충동으로 모색해 들어갔던 미켈란젤로와, 아름다운 색채로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한 감동시켰던 티치아노를 모두 종합한 인물이 바로 틴토레토다
P414 베로네세는 계속 문제를 삼는 종교재판소 재판관들에게 화가들은 시인이나 미친 사람처럼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항변했다고 전해진다
P420 관광시즌이 되면 베네치아에서는 거의 매일 밤 비발디의 사계가 연주된다. 베네치아에는 나폴레옹 시대때 폐쇄된 성당 건물들이 많은데, 여러 곳이 작은 연주회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P435 그들은 고급 매춘부들의 상세한 영업 정보를 담고 있는 책자까지 발간해서, 전 유럽에서 몰려든 손님들에게 매춘부들의 개인별 외모 수준, 신체적 특징과 주특기, 추천하는 체위, 업소의 주소와 상세한 가격 정보를 제공했다
P449 1962년에 베네치아 시는 그녀에게 명예 시민권을 증정했다. 그녀는 "나는 예술품 수집가가 아닙니다. 나는 박물관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P457 안도 타다오는 르네상스의 전통과 바로크의 역사를 자랑하는 예술의 도시에서, 베네치아의 건축 역사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면서도 본인 특유의 미니멀리즘적인 절제이 미학을 발휘했다
P464 일본은 이미 1940년부터 일본 국가관을 건설하고 진출했는데, 1986년가지만 해도 한국 예술은 세계 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P468 그들에게 매년 일정 기간 동안 일탈의 시간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지배층의 관용 정신을 보여준다. 카니발 기간 중에는 귀족에게 골탕을 먹이거나 귀족을놀리는 행동도 처벌받지않았다
P477 지상의 천국,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순례자들과 십자군들은 유럽의 마지막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며, 그들이 성지에서 속죄받아야 할 죄의 목록을 더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는 가면을 쓰고 아름다운 여성과 함께 향기 나는 포도주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날 밤이 그들 인생의 마지막 밤인 것처럼, 노래하고 춤추며 밤새도록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P482 원래 제목은 인생의 짦음에 대하여란 노래인데, 프랑스 파리의 대학생들이 이 노래를 <그러므로 인생을 신나게 즐깁시다>로 바꾸었다. 13세기 중세 대학에서 맥주를 마시기 전에 함께 노래하는 권주가였는데, 지금은 대학 졸업생들이 학교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함께 부르는 합창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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