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여행
작가 : 황헌
출판사 : 책읽는 고양이
읽은날 : 2022/08/01 - 2022/08/05
가야관련 역사서는 처음 읽어본 것 같다.
역사책에서는 삼국시대에 대해서 많이 배우지만 사실 삼국시대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게 거의 없다.
역사서 자체가 전해오는 게 적고, 유물이나 유적도 제대로 발굴된 것이 없다보니 해석도 제각각이다.
그러다보니 국뽕에 취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때 내려온 해석까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도 가야는 더더욱 모른다.
기껏해야 김수로왕 이야기, 우륵의 가야금 이야기, 금관가야와 대가야의 멸망이야기, 김유신 이야기 정도가 내가 아는 가야이야기의 전부다.
이 책은 가야국 초보인 나에게 가야국의 고분군과 유적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다.
가야의 역사에 웬 고구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왜 광개토대왕의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지, 가야국의 유적유물을 이야기하면서 왜 경주 유적들을 봐야 하는지도 설명해준다.
삼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가야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는 게 미안할 정도다.
우리나라 역사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p77 어쨋든 이처럼 목곽묘가 주로 만들어지는 2세기 후반~4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에서 최고의 문화를 자랑하는 곳은 김해 지역이었다. 특히 3~4세기에 최고의 문화를 향유한 집단은 대성동 고분의 주인들이다.
p92 삼국지의 기록에 따르더라도 적어도 3세기 전반에 김해가 일본과 연결고리에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는 중국, 일본 세력도 함께 사용하는 해로였기에 더욱 다양한 교류가 가능했던 것이다.
p115 이처럼 항구 도시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조직될 수밖에 없었다. 금관가야는 이를 위해 이른 시점부터 철제 무기와 말 등 상당한 무력 기반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p123 4세기 시점을 보면 무장 기반은 금관가야에 비해 100년 정도 뒤지고, 국가 시스템 역시 정치적 권력자가 아니라 제사장 권위의 지배자가 더 중요시되던 곳이 일본이었음을 알 수 있다.
p143 391년 왜가 백제, 가야, 신라를 함락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은 앞서 이야기했듯 과장된 이야기였다. 당시 일본은 오히려 백제, 가야로부터 고급문화를 받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이었고, 신라 정도만 공격 대상으로 싸우고 있었다.
p199 삼국사기에 따르면 미추왕이 김 씨로 최초 신라 왕이 된 인물이기에 그만큼 시조로서 그의 무덤 역시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
p203 이미 광개토대왕릉비를 보아서 알겠지만 삼국 시대 역사는 문장 그대로 읽고 끝내기보다 여러 부분을 세세히 검증 확인하면서 봐야 할 과대 포장과 재해석 부분이 많다.
p210 신라는 새로운 왕비 가문과 결합할 때 족보를 재구성하든지 신화를 새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될 수 있으나 당시 시대에는 지배자의 위대한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다름 아닌 신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p228 아랍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가 그동안의 여러 정보를 취합하여 1154년에 펴낸 천애횡단 갈망자의 산책이라는 지리서에는 신라의 지도와 함께 “신라를 방문한 여행자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금이 너무 흔하다. 심지어 개의 쇠사슬이나 원숭이의 목테도 금으로 만든다”라 기록하고 있다.
p234 신라 국왕 김진흥을 사지절 동이교위 낙랑군공 신라 왕으로 삼았다라는 기록이 남는다. 이렇게 김진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으니 이것이 다름 아닌 객관적으로 교차 검증이 가능한 한국에서 김씨 성을 활용한 첫 기록인 것이다.
p246 6세기 중반 경주 진골들이 거칠부가 쓴 국사라는 책을 통해 계보를 정리했듯이, 6세기 후반 금관가야인들도 신라에 비록 흡수되었으나 개황력을 통해 자신의 계보를 정리하여 당대 혈족 중심의 흐름 변화를 함께 했음을 의미한다.
p283 이처럼 왕가의 족보를 알리는 것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릉비 때도 그렇지만 왕이 중심되는 시대에는 아주 중요한 문화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p287 신라에 존재했던 설화를 거의 똑같은 구조로 복사하여 왕건의 조상에 입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신라 말 지방 호족들은 자신의 선조를 부각시키는 이야기를 만들 때 종종 신라에서 유행하는 이야기를 가져온 것이다.
p292 고대부터 지금까지 남아 전해지는 난생 설화를 비롯한 수많은 이야기는 각각의 시대와 지역에 따라 꾸준히 변화하며 살아남은 흔적일 뿐이며, 이에 현재 남은 표현을 바탕으로 과거의 의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예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점
p296 사실 수로부인에 나오는 용은 용왕이고 거북이느 ㄴ육지와 바다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수로부인은 토끼였던 것이다. 즉 별주부전의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실제 역사인물을 넣어 새롭게 재조합한 전설이니 수로부인 이야기는 다름 아닌 8세기 버전의 별주부전이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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