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작가 : 손열음
출판사 : 중앙북스
읽은날 : 2022/08/25 - 2022/09/05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손열음님의 칼럼모음집
피아노도 잘치고 예술감독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얼굴도 예쁘고...
뭐하나 빠질게 없는 친구...
피아니스트의 음악이야기는 또다른 맛이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그렇게 이쁜데 치기는 엄청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연주하는 것과 듣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
30분 연주하기 위해 300시간 연습한다는 말에서 우아하지만 엄청나게 물질을 해야하는 백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죽어라 연습해서 올라오니 넋놓고 보게 만들지...
손열음이라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살아가서 참 좋다.
p27 순간적으로 현을 때린 해머는 곧장 제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건반을 계속 누르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상 그 음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한 번 만들어낸 소리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p32 절대음감을 소유했던 작곡가들의 음악은 음계 자체가 특정한 의미를 띠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는 같은 장조라도 장난스러운 분위기에는 C장조를, 우아한 분위기에는 G장조를 주로 사용했고, 같은 단조라도 쓸쓸한 느낌일 때는 주로 A단조, 격정적인 느낌은 주로 C단조로 표현했다. 또한 E플랫장조는 매우 즐겨사용하면서도 이와 가까운 A플랫장조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p36 내 리듬감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건 바로 이 점에서였다. 나는 분명 박자는 잘 맞추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사람을 움직이게 할 만한 리듬은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도 폼 나는 리듬감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41 실로 접해본 적 없는 최악의 반응이라고 느껴졌다. 웃어지지도 않고,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에 커튼콜에도 제대로 임하지 못하다 결국 박수도 그쳤다.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나를 보러온 사람들마다 ‘반응이 그렇게나 좋은데 왜 웃지도 않고 금방 들어갔느냐’는 거였다
p44 그는 집을 떠난 지 한 달이 조금 못 되어, 죽은 막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청춘을 송두리째 흔든 사랑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버린 것에, 프로코피예프는 음악으로 화답했다.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 G단조 Op16이다
p49 피아노 협주곡 23번 A장조 K.488의 2악장 역시 마찬가지다. 아주 기꺼이, 깊숙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이 악장은 그 어떤 실낱같은 희망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끝나버린다. 주목할 것은 그 뒤에 등장하는 3악장이다. 이전 악장과는 아무런 관련성도 없다는 듯 다시없을 유쾌함을 자랑하는 이 악장은 마치 슬펐던 건 슬펐던 거고, 이젠 이미 지나버린 일, 그만 다음으로라며 아무렇지 않게 삶의 다음 장에 스스로를 내맡겨버리는 그의 자세, 모차르트 음악의 진정한 근간을 보여준다
p57 다른 말로는,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음악들의 시작이었다
p60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려본 적 없는 부분에서 어이없이 틀려버린다거나 완전히 까먹어버린다거나 하는 일은 예사다. 그 정도 무대의 배신은 모두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다만 손, 머리, 귀 모두가 완벽하게 곡을 외우고 있으면, 한쪽 기관이 배신당했을 때 다른 기관이 재빨리 수습해 줄 수도 있게 된다.
p65 페달은 이런 식으로 연주자의 취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손은 아무래도 테크닉 없이 취향을 담아내기가 힘들지만, 발은 상대적으로 단순해 피아니스트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p68 아르투르 루빈스타인도 그랬다. 그는 본 연주가 모두 끝나고 바로 다시 무대에 나와 3-5분 남짓한 쇼팽의 연습곡, 왈츠, 폴로네즈, 멘델스존의 무언가 등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 것을 무척 사랑했다. 이것을 잘 아는 청중들 역시 그의 음악회에서는 진짜 마지막 곡, 마누엘 드 파야의 Danza del fuego를 듣기 전까지는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p73 문제는 내게 그 느낌이 예전 A 440Hz의 도를 낼 때의 안정된 느낌과는 비할 바 없이 별로였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 도는 도가 아닌 것 같은데 도이긴 하니까 할 수 없이 도라고 내는 도인 것이다.
p87 그렇게 반강제로 인민의 음악가가 된 쇼스타코비치. 그의 인생은 곧 한 번 더 박살이 났다. 나치의 선전음악으로 십분활용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처럼 인민 화합을 꾀하는 대작을 원한 스탈린에게 하이든의 중기 교향곡처럼 장난스럽게 시작해 갖은 풍자와 해학을 일삼은 교향곡 9번 Op70.을 바치자, 지다노프로부터 타락한 부르주아의 형식주의를 추종한다는 열띤 비판을 받았다. 이내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을 찬양하는 인민 영화음악이나 담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p92 이런 자리에 서는 베토벤에게는 자신의 음악성과 기교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신개념 곡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피아노 소나타 2,3,4번은 스케일, 아르페지오, 트릴, 더블옥타브, 3/4도 동시 진행, 연타 등 어려운 기교들로 점철되었다
p96 평생의 친구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부인 아델레가 사인을 요청하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첫 소절을 그려주며 “애석하게도 브람스가 안 썼음”이라고 적었다 하니… 유머 있게를 강박적으로 강조하던 슈만과는 다른 형태의 융통성을 지녔던 건지도 모르겠다.
p99 모차르트의 음악은 단 한 음도 뺄 것이 없다고 했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말처럼, 모든 음이 각자 놓여야 할 위치에 저절로 가 있는 것 같은 이 완벽한 매무새는 그의 자필 악보를 보면 또렷이 알 수 있다. 수십 번을 고쳐 쓴 흔적이 역력한 베토벤의 악보와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마치 누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기만 한 것 같은 그의 악보, 지운 흔적 한 번 없이 써내려간 그것들을 보노라면 흡사 인간세계 저 너머엔 분명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p100 영화 아마데우스의 또 다른 장면에서 모차르트가 한탄하며 뱉는 그 대사처럼 “저는 상스러운 놈입니다. 하지만 제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p102 슈베르트는 히트작만 수십 곡이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이 모든 작품이 별 이유 없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p104 아직까지는 슈베르트를 연주하며 손이 꼬이지 않는다는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은 불규칙해서 도전히 손에 익지 않고, 화성 전개마저 엉뚱하기 그지없어 머리로도 익혀지지 않는 이 곡들의 문제는, 전혀 다른 듣는 이의 사정, 떠오르는 시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긴 뿐인 그의 음악이 어렵게 들릴 리 만무하다. 보기에는 한없이 우아한 백조 같은 슈베르트의 음악. 물 속에서 쉬지 않고 발 굴러야 하는 음악가들에게는 손해 보는 장사임이 틀림없는데도 여전히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다.
p114 자산, 생계수단, 자유까지 모두 잃은 그는 마침내 12월 22일,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인과 두 딸과 함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금 수탉과 자신의 미완성작 오페라 모나 바나의 스케치, 단 두 개를 품에 안고 뚜껑도 없는 썰매에 올라 헬싱키로 도망쳤다
p118 가장 거슬렸던 점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은 구조였다. 교향곡 1번의 실패로 와싱상담을 한 결과가 이것? 좀 비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p123 문제의 희생의 춤, 그 첫 페이지는 각각 한 마디씩, 3/16~5/16~3/16~4/16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뀌면서 시작해, 다시(단위는 16분음표) 5-3-4, 3-3-5-4, 3-4-5-5-4로 진행된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이해할 필요가 없다. 아무런 패턴도 없다는 얘기이니까. 거꾸로 말해 그 어떤 장단도 허용치 않는, 리듬에의 속박인 셈이다.
p129 그날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보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여기엔 매우 이상한 슬러(이음줄)가 있네? 두 마디, 두 마디, 또 두 마디에 사용했다가 여기 딱 한 마디에만 안 썼지? 왜일까?” 매일 봐 왔던 악보인데… 맹세코 생전 처음 발견하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신기한 것을 이렇게까지 몰랐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p133 1950년대 후반, 그의 경력이 내리막길을 걷자 음반사가 그를 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그의 가장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는 파가니니 무반주 카프리스 앨범, 차이콥스키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이나 바흐와 이자이의 무반주 소나타 앨범 등은 모두 그가 20대 초반에 녹음해 놓은 것들이다.(그런데도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은 훗날 자신의 파가니니 무반주 카프리스 앨범을 가리키며 마이클 래빈이 이 곡을 녹음한 줄 알았더라면 난 절대로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단다)
p142 피아노 현이 다 부서질 것 같은 러시아산 강철 타건으로 흡사 북한의 선전가요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그의 젊은 시절을 보고 있노라면, 천재의 삶이란 참 고달픈 것이구나 싶다. 시간이 흘러 그의 가르침으로 자란 내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똑같이 2위에 입상할 동안, 그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말았다.
p146 눈부신 미모도, 자극적인 무대 매너도, 눈물을 짜낼 스토리도 없는 데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중국인이기까지 한 그가 아무리 독일 음악을 독일 사람보다 몇만 배 더 잘 연주한들, 팔리기 어려운 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할 정도로 그의 인생은 영 풀릴 줄을 몰랐다
p153 전 미국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며 귀국한 밴 클라이번은 클래식 음악가로는 최초로 뉴욕 시가지에서 색종이 테이프 퍼레이드를 가졌고, 그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음반은 클래식 음반 최초로 100만 장이 팔리며 빌보드 차트에 125주나 머물렀다. 유럽에 비해 턱없이 짧은 역사와 그에 따르는 문화적 열등감을 단박에 해소시켜 준 이 청년이야말로, 당시 미국사회가 꿈에 그리던 영웅이었던 것이다.
p158 내가 차이콥스키 협주곡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자 그가 1악장 중간 카덴차 부분을 연주해 주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좀 더 심장이 커지는 느낌으로, 벅차는 느낌, 참을 수 없는 느낌…” 그와 그의 음악은 진짜 그랬다. 러시아 음악에 대한 사랑이 벅차오라는 느낌, 조국에 대한 차오르는 애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나에게는 그가 바로 러시아다
p163 릴리 크라우스의 미친 연주에 빠져 나처럼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겐 그녀가 바이올리니스트 시몬 골드베르크와 함께 작업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음반을 추천한다
p164 가곡이라는 것은 당연히 가사를 모르고 듣는 것과 알고 듣는 것이 천양지차다. 하지만 난 슈베르트의 가곡들이라면 가사를 모르고 듣는 것도 죽을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종 대단치 않은 시들마저 천상의 음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 슈베르트니가
p175 그의 곁에는 일당백의 친구들이 있었다. 슈파운, 포글, 쇼버를 위시한 슈베르티아데 멤버들이 그들이다. 그들조차 슈베르트를 “남들에게 인정 못 받는 무능력한 작곡가”로 여겨 지지를 멈추었다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슈베르트는 없었을지 모르다.
p186 몇몇 교수들의 비상식적인 형태가 낳은 여러 폐단, 이를 모두 피해 최대한 공정하고자 짜낸 방책들은 예술성을 묵살하는 도구로 되돌아왔다. 애초에 우리의 잘못이었으니 법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문제는 그 피해가 애꿏은 음악 영재들에게만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p194 독일과 미국 청중의 반응을 모두 섞어 놓은 가장 뜨거운 청중은 바로 한국 청중이라는 것이다. 연주자가 악기에서 손을 놓는 시점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며 연주자를 몇 번이고 무대로 다시 불러내는 한국 청중은 이미 전 세계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p202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왜 이렇게 죽도록 연습을 할까? 제일 간단하게는, 피아노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건반을 누르는 게 아니라 한 음 한 음을 일일이 잡아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실 때문 같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내 친구들은 모두 이 감각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항상 불안해한다
p207 다른 천재가 깔아놓은 초석 없이, 다른 천재로부터 받은 영감 없이, 또 다른 천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안겨주고픈 욕심 없이 천재는 결코 탄생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집념, 부모의 희생, 훌륭한 스승, 헌신적인 추종자… 그 모두의 결과물이 천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가 보고 싶다면 우리 모두 TV를 켜자
p211 피아노 치러 다니는 와중이지만 한 번 무대에 서는 시간은 길어 봤자 2시간, 짧으면 20-30분에 불과할 뿐이니, 누군가는 음악가를 두고 30분간 무대에 서기 위해 300시간을 무대 밖에서 준비만 하는 인생이라고 했다는 데, 정말 그런 것도 같다
p216 내가 음악을 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기량을 쌓기 위해 자기 스스로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지만, 결국 그 과정은 모두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p223 우리 아빠가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거기 수돗물은 나오냐고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 하니… 도대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한 강원도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p228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던 그 일을 그분은 하나하나 조용히 실천했다. 수십억대의 고악기를 사서 아무 대가도 없이 재능 있는 음악도들에게 빌려주었고,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직접 찾아가 이들과의 협연 무대를 주선하기도 했다. 한국에는 이들을 내세울 변변한 무대조차 없다는 안타까움에 직접 금호영재콘서트라는 무대를 마련해 매주 어린아이들을 무대에 세웠다. 나 역시 이 무대에서 그분을 처음 뵈었다
p236 어쩌다 전혀 준비 안 된 새 곡을 가지고 당장 내일이나 모레 외워서 연주해야 할 때의 마음가짐은 대략 이렇다. “될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계속 같은 부분에서 기억이 막히고 아무리 해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암기 과정, 어느새 어둠의 목소리가 깃든다. “이러지 말고 쳤던 곡으로 바꾸지?”
p240 연주도, 무대도 혼자 올라가는 독주회가 오히려 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내가 혼자 감당하면 그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나 앙상블 연주에서는 행여나 남에게 피해를 입힐까 봐, 아니면 남에게 방해를 받을까 봐,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서 독주회가 더 좋냐고? 당연히 아니다. 독주회 한 번 할 에너지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열 번에 앙상블만 스무 번은 하겠다. 그럼 혼자가 좋은 건 아니네. 음… 그런가? 뭐지
'독후감 > 2022_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79] 나 혼자 국립중앙박물관 (0) | 2022.09.20 |
---|---|
[2022-78] 신 없는 세계에서 목적찾기 (0) | 2022.09.14 |
[2022-76] 나는 말하듯이 쓴다 (0) | 2022.09.07 |
[2022-75] 나 혼자 제주여행 (0) | 2022.09.06 |
[2022-74] 나 혼자 전주여행 (0) | 2022.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