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선미술관
작가 : 탁현규
출판사 : 블랙피쉬
읽은기간 : 2023/03/30 -2023/03/31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나라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후기의 우리 그림을 다양한 스토링텔링으로 풀어나갔다.
아무래도 신윤복, 정선, 김홍도등의 그림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그 그림에 이야기를 더하니 마치 영화를 보는듯 그림이 살아 움직인다.
역시 그림은 알고 봐야 더 재미있다.
다 그리지 않아 더 멋지다라는 말을 느끼게 한다.
어릴 때 간송미술관에 청소하러 다니면서 봤던 그림들이 아쉽다. 누군가 이렇게 알려줬으면 더 섬세하게 자세하게 봤을텐데..
이런 책은 널리 읽혀야 한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10대의 감수성으로 우리 미술을 접해야 더 깊이 느낄 것 같다.
어른의 감성은 한계가 있다. 뭔가 부족하다. 내가 늙었다는게 아쉽다.
아마 고려시대 불교 탱화에도 이런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것 같은데 누군가가 불교탱화도 좀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좋은 책이다.
p19 이렇게 놀이하는 선비들을 그린 그림을 현이도라고 부른다. 현이는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배불리 먹기만 하고 종일토록 마음 쓰는 바 없으면 곤란하다. 장기 바둑도 있지 않은가. 그러 것이라도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다”
p25 그림에 방을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선비의 옷차림새로 혹은 늘어놓은 물건들로 보아 방 안임이 분명하다.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닥, 벽, 창, 문은 그리지 않았는데 이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하는 방법이다.
p28 선비가 되고 싶었던 중인들이 선비 방 안에서 쓰던 물건을 벌여놓은 것은 선비의 욕망을 욕망했기 때문이다. 여러 욕망을 나타내는 물건 가운데 단연코 으뜸은 4갑으로 쌓여 있는 책이다.
p33 현감 시절 김홍도의 매사냥 사랑을 증명하는 그림이 현재 2점 전하는데, 하나는 사냥 장면을 풍속화로 담은 것이고(그림 <호귀응렵>부분 참고) 다른 하나가 이 그림 <귀인응렵>이다
p42 정선은 당대의 진짜 경치를 그렸기 때문에 정선이 율곡 시절 봉은사를 상상해서 그렸다기보다는 자신이 찾아갔던 봉은사 모습에다가 율곡을 주인공으로 그림을 꾸몄을 가능성이 크다.
p59 아예 색이 없지는 않아 기녀 치마는 황색으로 하고 선비 도포를 청색으로 하여 단청을 대비시켰다. 그럼에도 아주 옅게 하여 크게 튀지 않고 색을 아낀 덕분에 필선의 정교함이 잘 드러났다.
p76 신윤복은 이 그림에서 대문 지붕만 언뜻 보여주거나 오동나무 둥치도 일부만 그렸다. 방 안에 건넛방도 보이게 해놓고 거기에 가야금을 일부만 드러내는가 하면, 방 안 여인의 버선발 하나를 치마 바깥으로 내기도 한다. 이렇게 다 그리지 ㅇ낳아야 더 아름다운 법이다.
p85 30점 그림에서 기방이 무대인 그림이 총 5점인데 5점 모두 다른 드라마를 연출하였으니 신윤복을 기방 드라마 전문 연출가라고 불러도 되겠다.
p89 인재 신한평은 혜원 신윤복의 부친으로 이들 부자는 모두 화원이었다.
p95 신한평은 타고난 그림 솜씨로 이 장면을 충실하게 기록할 뿐이다. 저 울고 있는 아이가 훗날 조선의 최고 풍속화가가 되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 그림보다 재미있는 그림은 없다.
p99 아무리 봐도 저 사미승은 같은 화첩에 들어 있는 그림 <단오풍경>에서 계곡 나무 뒤에 숨어 기녀들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던 그 사미승같다. 여체에 대한 갈망을 억제하지 못한 것은 역시 수행이 한참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p101 신윤복의 화첩 속에는 또 다른 과부 여인이 봄날 후원에서 개들이 짝짓기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 태우는 장면이 있는데(이부탐춘) 이 또한 조선에서 과부들이 처한 답답한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것이 신윤복이 그림 속에 담은 풍자이다. 서양이건 동양이건 풍자는 풍속화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이고 신윤복은 당대 여인들의 처한 상황을 동정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p107 신윤복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항상 눈빛을 교환하며 대화를 나누었지만 이 그림에서는 예외다.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숨죽인 두 여인 사이의 적막을 깨는 것은 솔잎 앞에서 짹짹거리며 나는 참새 세마리다.
p109 신윤복이 여자였을 거라는 상상의 나래가 가능했던 것은 화가가 여인들만의 공간과 감정을 기가 막히게 묘사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p122 중국 그림을 따라 그리던 과거에는 어부와 나무꾼 모두 중국인이었고 나무꾼의 물건도 중국 나무꾼들이 쓰던 기다란 막대기인 멜대였다. 이 멜데를 정선은 조선인이 쓰던 지게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이는 중국을 소화하여 조선화시킨 결과이고 곧 조선 후기 문화 절정기 미술이 갖는 고유색이다.
p128 옛사람들으 ㄴ달과 마시는 것을 상월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풍류남들은 보름날이 되면 같이 달 보며 술 마시기 위하여 친구들과 만났다. 어부는 매일 달 보며 마실텐데 역시 보름달이 으뜸이다.
p149 스님들의 버스킹. 조선시대 스님들은 길거리에서 탁발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 수행하랴 탁발하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렇듯 신윤복 풍속화는 조선시대 불교계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한 좋은 사료가 된다
p201 기로신들이 자신들의 초상으로 시대를 증언하였으니 동양이건 서양이건 문화 절정기때 지배층의 초상만큼 빛나는 미술은 없다는 것이 증명이 된다.
p221 이것이 기해년과 갑자년 기사첩의 큰 차이로 세부 표현에서 영조대인 갑자년 화첩이 많이 후퇴하였다. 그렇다면 그림 솜씨는 영조 시대 화원들보다 숙종 시대 화원들이 더 높았다고 봐야하는데 이것은 화원들 솜씨만의 문제는 아닐테고 숙종과 영조 시대 전반의 문화 수준 차이일지 모른다.
p230 무동과 처용무인 옷에도 흉배를 생략하여 복식 표현이 밋밋해졌다. 25년 전 숙종대 기사첩과 비교하여 가장 떨어지는 부분이 무동과 처용무인 묘사가 아닌가 한다.
p241 그런데 무동이건 처용무인이건 인물들의 묘사가 전혀 기운생동하지 않다. 팔 모양도 무동이건 기녀건 처용무인이건 모두 똑같다. 이 점 역시 영조대 기사첩이 숙종대 기사첩에 미치지 못하는 증거들 가운데 하나다.
p246 이진기는 너무 늦은 나이에 등과하였기 때문에 청직을 지내지 못하였고 이것이 기로소 입소에 결격사유가 되었던 것은 조선 관료제에서 청직이 꽃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p263 그러니까 김홍도 그림에 홍의영의 문장과 글씨, 유한지의 그림 제목 글씨 등 당대를 대표하는 대가들이 다시 한 번 모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그림은 좋은 문장과 좋은 글씨를 같이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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