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파리는 언제나 축제
작가 : 메리 매콜리프
번역 : 최애리
출판사 : 현암사
읽은날 : 2020/06/15 - 2020/06/26
메리 매콜리프의 파리 3부작의 마지막책..
그림이나 사진 하나 없는 이 두꺼운 책을 오로지 역사에 대한 즐거움으로 다 읽었다.
내가 기특하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제발 참고사진좀 넣어주면 좋겠다.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책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 같다.
어쩐지 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때 많이 들어본 이름인가 했다.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벌어지기 직전까지를 배경으로 파리에 모인 예술가들과 셀러브리티들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주인공은 헤밍웨이...
패션이 바뀌면서 샤넬에게 밀려나는 푸아레의 모습이 참 안쓰럽다..
밀려나지 않기 위해 파티도 크게 벌이고 돈도 쓰지만 결국 자기의 파멸만 앞당기게 된다.
퇴폐적이고 선정적인 파리..
이런걸 낭만이라고 불렀던 걸까?
무슨 매력이 있어서 그 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자신의 일생을 불태웠을까? 참 재미있는 도시다..
책은 재미있었는데 너무 많은 인물들이 쏟아져나오니 중간중간 갈피를 못잡았다.
다시 읽을때는 인물관계도를 그려서 읽어야겠다.
P12 1920년대를 미국에서는 아우성치는 20년대라고 하며, 프랑스에서는 광란의 시대라고 한다
P24 그녀의 옷은 허리선을 없애고 스커트 길이를 짧게 하여(충격적으로 발목을 드러내고) 활동성을 높임으로써 당시 여성들을 해방시켰으니, 전시라는 여건뿐 아니라 점차 확대되어가는 여성의 사회적 해방이 마침 그런 옷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P32 그의 탈옥 시도들은 드라마틱할 뿐 아니라 단기간이나마 실제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탈진과 병, 때로는 불운에 덜미를 잡히기는 했지만 말이다
P38 파리는 그만큼 생활비도 싸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당시 미국은 금주법 시대였던 만큼, 파리의 넘쳐나는 술과 성적인 것에 대한 자유방임적 태도가 특별한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P50 사태를 복잡하게 한 것은, 프루스트의 병약한 건강 상태와 낮밤이 바뀐 생활 습관 탓에 그가 자거나 쉬는 낮 동안 사방이 조용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P58 수탉과 아를캥에서 콕토는 "거창한 것(독일 음악)을 거부하는" 순수한 프랑스 음악에 호소하며 사티를 그런 음악적 돌파의 지도자로 선포했다
P74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연맹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믿지는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P80 이 노천극장은 푸아레가 실현시킨 또 하나의 판타지였다. 그는 샹젤리제 근처 자기 집 정원을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그곳에서 "사교계 엘리트들에게 어필할 만한 섬세하고 세련된 오락"을 제공하여 다른 파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를 궁리했던 것이다.
P85 처음에는 그 조건에 주춤했던 독일 측도 6월 28일 조약에 서명했다. 베르사유의 거울 방, 1871년에 비스마르크가 프랑스의 참패에 모욕을 가하듯 카이저의 대관식을 거햄항므로써 독일제국을 공식적으로 건립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P95 고통은 지나간다네, 마티스라고 그는 젊은 동료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남지
P123 거나하게 취한 스트라빈스키가 드넓은 댄스 플로어 가장자리의 발코니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옆방에 있던 쿠션과 베개 받침들을 아래쪽 손님들에게 던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베개 싸움이 벌어져 새벽 3시까지 계속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P158 사회가 그녀가 말하는 "꿈꾸는 자들"에게 "물질적인 염려에서 해방되어 연구에 전념하는 삶 가운데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P172 그는 몽파르나스를 좋아하지 않았고 훗날 그곳을 울적한 동네라고 불렀지만 실비아 비치와 이야기하기를 즐겼고, 그녀의 도서 대염점에서 책을 빌려 읽음으로써-투르게네프와 D H 로런스, 도스토예스키, 톨스토이에서부터 신간 문예지에 이르기까지- 미흡한 교양을 벌충할 기회를 한껏 누렸다
P205 케슬러는 시인이자 작가였던 피에르 장 주브도 방문했는데, 주브는 "프랑스의 비극은 이류 국가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류로 올라가려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P219 그뿐 아니라 그녀가 화가 난 것은 만 레이가 예사로 바람을 피우면서 자신들의 관계는 사랑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그는 그녀에게 "우리는 사랑하는 게 아냐, 그저 몸을 섞을 뿐이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P224 하지만 정부의 반응에 그 못지않게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파리에 와 있는 미국인 관광객들이 영향이었다. 그 대부분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과 편견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왔으니,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구분에 대한 요구도 그중 하나였다
P234 샤갈은 자신과 아내와 딸을 굶주림에서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예술적 영감도 말라 죽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P241 당시 몽파르나스에 살던 휴 포드가 말한 대로, 딩고 같은 곳에 드나드는 고객들은 헤밍웨이처럼 실제로 뭔가를 성취하는 이들이 아니라 "대개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대해 떠들 뿐 술만 마시는 자들"이었다
P251 벤더는 자신의 요트 '플라잉 클라우드'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는데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 소유 요트 중 하나로 승무원만 마흔명에 이르렀다. 그가 첫 데이트 때 샤넬을 데려간 곳도 그 배였다
P252 벤더 쪽에서는 왜 그렇게 그녀에게 끌렸던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해 샤넬은 "왜냐하면 난 그를 유혹하려 하지 않았으니까"라고 대답했다
P255 헤밍웨이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책을 내어 성공할 능력이, 아니 도대체 책을 낼 능력이 없다는 불안에 있었다
P258 1924년, 이제 여신으로 불리는 랑글렌은 대중매체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으며, 그녀는 대담한 옷차림과 파티 걸이라는 평판, 그리고 세트 사이에 코냑을 홀짝이는 버릇 등으로 얻은 망나니 이미지를 태연히 받아들였다
P267 포드의 권위주의도 더욱 심해져서, 그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여가 시간까지 규제하려 들었다
P279 문제는 1925년 푸아레의 패션이 샤넬이나 장 파투 같은 다른 디자이너들의 편안한 유선형 패션에 비해 지나치게 복잡하고 구식이라는 것이었다
P281 이 전시에서 진정 충격적인 요소는 '300만을 위한 도시'였고, 특히 '부아쟁 플랜'은 많은 사람들에게 파리를 파괴하기 위한 플랜으로 여겨졌다
P285 사티가 그토록 가난하게 살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언제나 흠 없이 깔끔한 옷차림이라 모범적인 공무원처럼 보이던 그가 거의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P297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국방대학에서 논쟁을 벌였던 문제들에 대한 노문을 펴냈다. (그는 국방대학에 대해 "내가 지휘관으로 가지 않는 한 그 구덩이에는 다시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P302 1926년에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퇴폐적인 도시였고, 그 점에 당혹한 이들도 많았지만 오히려 반기는 이들도 많았으니 조세핀 베이커도 그중 하나였다
P305 너무 많은 광고 덕분에 보헤미안의 삶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팔리는 상품이 되었다
P324 앤더슨은 헤밍웨이를 가리켜, 비록 작가로서의 재능은 뛰어날지 모르지만 "우정의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P332 모네의 장례식에서 관을 덮은 검은 천을 치우고 꽃무늬 천으로 바꾼 것도 클레망소였다. "모네에게 검정은 어울리지 않아!"라면서
P339 레이놀즈는 헤밍웨이에 관한 그의 마지막 책의 찾아보기에 '날조'라는 항목을 넣기도 했다
P367 이 조약은 "국제 간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전쟁에 의존하는 것을 단죄"하고 합법적 방어의 경우 외에는 "국가정책의 도구로서의" 무력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P372 그 다음엔 화장이 또 문제였다. 마리는 화장이라고는 하지 않았고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에브는 현대 여성이었으니, 이는 어머니가 보기에는 "끔찍한 분칠에 덧칠"을 의미했다
P376 라벨은 만일 자기와 공부했다가는 "그 자신만의 뛰어난 멜로디 재능과 자발성을 잃어버리고 '못난 라벨'이 될 수 있다며" 거슈윈의 레슨 요청을 거절했었다
P389 피카소는 바토 라부아르 시절을 오래전에 떠났을지 모르지만, 여성과의 수많은 관계를 통해 불같이 타올랐다가 이전 연인을 버리고 새로운 정복을 향해 나아간다는 오랜 패턴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P419 장 콕토가 대조적인 두 개의 마네킹을 스케치한 적이 있었다. 하나는 볼품없는 푸아레, 다른 하나는 미끈한 샤넬. 그러고는 이런 설명을 써넣었다. "푸아레는 가고 샤넬이 오다"
P423 그 하나는 그곳 주민들이 "무절제한 술꾼과 바람둥이들의 호색적인 집단"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예술가들이 카페에 모여 고상한 예술을 논하는 조화로운 공동체"였다는 것인데 실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는 데 포드와 코디는 의견이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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