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모든이의 과학사 강의
작가 : 정인경
번역 :
출판사 : 여문책
읽은날 : 2020/06/13 - 2020/06/23
학교다닐 때보다 과학책을 더 많이 읽는 것 같다.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과목인 줄 알았으면 학교다닐 때 좀 열심히 할걸..
왜 수학만 열심히 했을까...
고대부터 현대까지 과학의 발전을 정리해서 한권으로 담았다.
아무리 천재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앞선 시대의 발견에서부터 인식하고 비판하면서 발전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모습을 보게 된다.
뉴턴이 참 옹졸하고 성격안좋았다는 건 알았지만 미적분학에서 논쟁이 붙은 상대방을 이렇게 치사하게 대우했는지...
그 옛날 히파티아에서부터 마리퀴리까지 여성 과학자들의 폄하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시험이 없어서일까? 과학책 읽는게 재미있네..
P15 과학은 자연세계의 사실을 말하고, 인간은 그 사실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가치판단을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지동설이나 진화론과 같은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는 모든 가치판단이 바뀌고 삶이 바뀐다고 할 수 있다
P16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획기적인 사실을 밝힌 것인데,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배우면서 삶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P24 유럽의 오만과 인종적 편견이 이러한 사기극을 연출했고, 유럽의 학계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P26 루시라는 이름의 이 화석인류는 130센티미터의 키에 유인원처럼 팔이 길고 뇌의 크기는 작았지만 인간을 닮은 펑퍼짐한 엉덩이뼈를 가지고 있었다
P31 최근 몇몇 연구는 구석기인들이 처음에 농사짓는 법을 몰라서 안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P32 농경생활은 인간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야생동물을 가축화하고 야생식물을 작물화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노력과 들었다
P35 농업의 3대 발상지였던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 아메리카 근방에 적어도 여섯 번 정도의 도시문명이 발흥하고 쇠퇴했다
P39 이 문헌은 린드라는 이름의 골동품 수집가가 이집트의 고대 유물 속에서 찾아낸 것으로 폭이 34센티미터, 길이가 3.2미터에 이르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84개의 문제와 답이 쓰여 있다. 덧셈과 뺄셈, 분수와 역수, 계산표 등의 산수 문제뿐만 아니라 기하학과 방정식 문제도 포함하고 있다
P41 바빌로니아인들은 달의 모양이 변하는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을 불길한 날로 생각하고 집에서 쉬었다
P42 갑골문으로 새겨진 은나라의 달력은 은력은 태음태양력으로서 60간지를 가지고 날짜를 기록했다. 태음태양력은 바빌로니아의 태음력과 이집트의 태양력을 절충한 새로운 기법의 달력이었다
P43 중국으 천문학자들은 달과 태양의 주기가 일치하는 더 큰 주기를 찾아냈다. 12삭망월과 1태양년의 차이인 11일이 19년 동안 누적되면 7개월이 된다. 태양력과 태음력을 일치시키는 주기가 19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것이다
P50 탈레스의 질문과 대답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P57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불완전한 세계지만 이데아를 본떠서 만든 최상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진리를 얻기 위해 우주를 탐구하는 것이 바로 자연과학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플라톤은 자연과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P62 특히 과학과 관련된 논리학, 물리학, 우주론, 자연사, 생물학 등은 고대에서 중세, 근대에 이르는 2,000년 동안 서양 학문의 뿌리가 되었다
P64 그는 달 위의 세계인 천상계는 영원불변의 완전한 세계인 반면, 달 아래의 지상계는 끊임없이 변하는 불완전한 세계로 설명했다
P70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과 도서관은 5세기까지 거의 700년 동안 그리스 학문 발전에 견인차 노릇을 했다
P71 기하학 원론에서 스물세 개의 정의와 다섯 개의 공리만을 가지고 465개의 명제를 증명했다
P76 알마게스트가 그렇게 칭송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완벽히 구현하는 지구 중심의 우주구조를 제시했던 것이다
P81 391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식 국교로 승인되었을 때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은 불태워졌다. 415년에 폭동이 일어났을 때 박물관은 철저하게 짓밟혔고,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의 여성 과학자 히파티아는 기독교 광신도에게 살해당했다
P84 그리스 과학이 수와 도형이라는 불변적 요소를 바탕으로 자연세계의 질서를 탐구했다면, 중국 과학은 음양오행이라는 관계론적 요소를 가지고 변화무쌍한 자연세계를 이해했다
P106 유럽에서는 1,000년이 넘도록 숫자체계에서 0을 생각지 못했는데, 그것은 0과 무한의 관념을 거부하는 그리스의 전통 때문이었다
P112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과 과학기술은 중국의 장기적 번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P114 중세 유럽에서 쓰인 율리우스력은 1582년 그레고리력으로 바뀌기 전에 약 12일의 오차가 났다. 중국에서라면 이런 주먹구구식 달력은 왕조의 수치로 여겼을 것이다. 중국에서 정확한 달력을 만들어 백성에게 알리는 것은 제왕의 의무지아 통치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P116 신성과 초신성은 별이 폭발하면서 밝게 보이는 현상으로 1054년에 폭발한 초신성의 기록은 중국과 고려, 일본에만 남아있다
P118 순우천문도라는 이름의 이 천문도는 1193년에 그려진 것으로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 1247년 다시 돌에 새겨 지금까지 남아있다
P121 그리스 문명은 오리엔트 문명인 이집트의 영향을 만나서 성장했고, 그 위치는 페르시아에 연결된 지중해 문화권에 있었다
P125 조선 왕조는 건국과 동시에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같은 과학 문화유산을 탄생시켰다
P131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온 수시력은 매우 정교한 역법이었는데, 조선의 천문관들은 수시력에 쓰인 수학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선 초에 명나라의 새로운 역법인 대통력이 들어왔지만 조선의 천문관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P132 20년 동안 이루어진 역법의 개정은 각종 천문관측기구를 제작하고, 수많은 관측자료를 모으며, 계산법에 능통한 전문 관리를 키우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 대규모 학술연구 사업이었다
P135 의방유취는 중국 고대부터 원나라 때까지 의학서적을 총망라한 책이다
P141 간단한 변화인 것 같지만 무거운 쟁기와 쇄골걸이 마구, 삼포제는 중세 유럽에서 농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큰 변화를 일으켰다
P142 십자군 전쟁은 서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슬람 세계를 약탈한 침략전쟁이다
P150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삽시간에 다른 나라로 퍼져나가는 식으로 유럽의 군사기술은 나날이 발전했다.
P153 작은 땅덩어리에 자원도 빈약한 유럽은 발견의 시대, 탐구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호전적 기질을 미화하며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 시대를 열었다
P164 16세기와 17세기, 피의 보복이라고 할 만큼 극심한 종교분쟁이 유럽세계를 휩쓸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교리와 영광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P167 플라톤 이래 모든 천문학자가 매달렸던 '현상을 구제하라'라는 지상과제를 코페르니쿠스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과학사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를 최초의 근대 천문학자인 동시에 최후의 고대 천문학자라고 평가한다
P173 이 말대로라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물리적 실재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형에 불과했다. 만약 그의 이론이 실재를 반영했다고 하면 즉각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P177 실제 항성 시차는 별들이 너무 멀리 있어서 확인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1838년에 가서야 입증되었는데, 그 사실을 몰랐던 튀코는 항성 시차가 보이지 않는 태양중심설을 인정할 수 없었다
P179 튀코의 모델은 프톨레마이오스 우주구조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종교적 이유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6세기는 그야말로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튀코의 세 가지 우주구조가 제각기 경쟁하는 천문학의 춘추전국시대였다
P182 등속원운동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플라톤 이래로 2,000년 동안 유지되었던 천체구조를 바꾼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P188 그는 궁정 음악가 출신의 아버지로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와 붉은 머리카락, 다혈질적인 성격 그리고 문학, 음악, 그림에 대한 재능을 물려받았다
P192 베네치아에서 자신의 고향인 토스카나 땅 피렌체로 돌아가며 부인과 이별을 고하고 두 딸을 피렌체의 수녀원으로 보냈다. 코페르니쿠스주의자로 살아갈 험난한 길을 예감하고 사적인 속박을 잘라낸 것이다. 그의 나이 47세에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P196 하지만 나중에는 과학과 신학은 별개이며 과학과 신학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때 신학을 조정해야지 과학을 신학에 맞춰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P199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종교재판소의 타협책을 거부하고 갈릴레오에게 공식적인 이단의 죄를 씌울 것을 명령했다. 고문의 위협 속에서 갈릴레오는 1616년에 이미 코페르니쿠스주의를 버렸다고 자백하고 말았다
P206 우리가 우주로 나가보면 지구가 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지구 안에 있는 우리는 '운동의 상대성' 때문에 지금 지구가 관성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P207 갈릴레오는 이 실험을 통해 자유낙하운동에서 변수는 질량이 아니라 가속도라는 것을 알아냈다
P213 1666년 뉴턴은 이 문제를 생각하며 달에 미치는 중력의 효과를 대략적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그해에 프리즘을 써서 빛과 색을 연구했고 미적분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도 세웠다. 24세의 뉴턴은 과학계에 혁명을 몰고 올 연구주제에 빠져서 기적과 같은 한 해를 보내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왔다
P219 17세기에 벌어진 입자설과 파동설의 대립은 20세기 초까지 계속되다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빛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의 파동적 흐름'이라고 밝히면서 일단락되었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기 때문에 뉴턴도 훅도 서로 틀린 것은 아니었는데 논쟁 이후 두 과학자는 평생 앙숙으로 지냈다
P220 그의 과학적 업적은 노벨상을 몇 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지만, 그가 인간적으로 보여준 모습은 과민하고 편집증적인 데다가 정서적으로도 뒤틀려 있었다.
P223 뉴턴은 힘의 물리적 원인을 다루지 않고, 힘이 작용해 물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를 수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만유인력의 존재를 드러냈다
P226 뉴턴은 미적분학을 이용해 갈릴레오가 발견한 지상의 운동법칙과 케플러가 발견한 천상의 운동법칙을 하나로 통합했다
P229 뉴턴은 왕립학회의 권위를 남용해 공식 위원회를 발족하고 만천하에 라이프니츠가 재기할 수 없도록 쐐기를 박았다. 1716년 라이프니츠가 사망한 우에도 미적분학에 대한 그의 공로를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P240 유럽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착취할 수 있는 천연자원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유럽인들에게 식민지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원이었다
P242 나중에 뉴턴 과학과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정복을 정당화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되었다
P245 1602년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중국 사대부들 사이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땅은 네모지고 중국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라고 알고 있었던 중국 지식인들은 이 지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P251 중국 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오만함은 서양 천문학을 낮게 평가했고 공들여 배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서양 언어를 배워 직접 서양 과학책들을 읽으려는 중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P253 그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마침내 서양식 역법을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1790년대 정조 대에 들어서면 세종 대의 칠정산과 같은 조선의 독자적 역법이 시행되었다.
P257 우리가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다. 이러한 그의 외침은 조선 후기 실학사상에서 하나의 줄기가 되었지만, 그의 우주론은 기이한 학설이나 철학적 사색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P261 유럽 세력에 쉽게 노출되는 위치에 있는 일본은 서양 선교사와 상인들이 접근하기에 용이했다. 하지만 중국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조선은 서양 선교사와의 만남조차 19세기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300년이나 늦었던 셈이다
P277 누구나 산업혁명기에 근대과학이 기술혁신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구체적인 지식의 응용보다는 과학적인 태도나 동기가 폭넓게 영향을 주었다
P281 라우아지에는 원소, 화합물, 혼합물을 근본적으로 구별하고 과학혁명기 이래로 화학 변화를 둘러싸고 있던 불확실성을 제거했다
P287 빛이 입자라면 알갱이와 같은 물질이라는 뜻이고, 빛이 파동이라면 어떤 물질이 진동해서 빛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P288 파동은 매질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질이 그 자리에서 진동함으로써 힘을 전달할 뿐이다
P293 전기코일이든 자석이든 둘 중 하나를 움직여야지, 움직이지 않으면 전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마침내 패러데이는 그 움직임이 자기장을 변화시켜 전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기장의 변화가 전기를 유도한다고 해서 이 현상을 전자기 유도라고 한다
P294 패러데이는 연구노트에 "실험은 수학 앞에서 기죽을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써놓았다
P299 톰슨은 일과 역학적 일의 상호 변환성을 통해 '열은 물질이 아니라 운동의 상태'라는 생각을 끌어냈다. 즉 열은 물질 입자의 운동에너지로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P314 변이 때문에 진화가 일어난다. 다윈은 같은 종 사이에 다른 특징이 나타나는 변이에 주목했다
P317 그해 7월 린네학회에서 윌리스와 자신의 이름을 공동 발견자로 올리고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 늦게 연락을 받은 윌리스는 이러한 처리에 전혀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P326 주기율표의 질서를 나타내는 원자량은 각 원소의 원자핵에 있는 양성자의 수를 나타낸다. 원자번호 1의 수소 원자에는 양성자가 하나뿐이고, 원자번호 92의 우라늄 원소에는 92개의 양성자가 있다
P331 이처럼 원자의 세계는 입자와 파동이 아닌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설명해야 하는 세계다. 이러한 문제를 통찰한 물리학자가 바로 보어였다. 그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대학에 이론물리학 연구소를 세우고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출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P332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원자의 세계에서는 측정하는 행위가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관찰 행위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P336 E=mc2은 질량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뿐, 질량을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말하지는 않았다.
P352 1898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반대해 수단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불과 여섯 대의 맥심 기관총은 40분만에 1만 4,000명의 수단인을 전멸시켰다
P356 하버의 아내는 독가스 살포 소식을 듣고 1915년 5월 어느 날 새벽,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최초로 동위원소의 존재를 밝힌 영국의 화학자 프레더릭 소디는 영국 군부로부터 런던탑에 감금하겠다는 위협을 받으면서도 독가스 관련 연구를 용감하게 거절했다
P356 놀라운 사실은 1915년 독가스를 만들어 실전에 투입한 하버에게 1918년 노벨화학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유럽 사회는 과학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마비되어 있었다.
P361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탈리아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1,000개의 태양보다 밝다"라고 외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오펠하이머의 입에서는 "나는 죽음의 신이요 세상의 파괴자다"라는 고대 힌두교 경전의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그 옆에 있던 케네스 베인브리지는 "음, 이제 우리는 모두 개자식들이야"하고 자조적인 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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